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10일 유로존 안정화를 위해 최대 75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기금 설립에 전격 합의했다. 각국의 언론은 한화 1095조원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지원을 ‘충격과 공포의 구제안’이라고 보도한다. 미국의 이라크 폭격과 같이 단숨에 엄청난 ‘돈 폭격’을 퍼부어 유로존의 위기감을 일격에 제압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날 세계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고 유로화도 상승했다. 그러나 이로써 유로 지역의 불안은 근본적으로 불식되는 것인가. 실상, 이번 조치는 부도위기 국가에 거액의 돈을 다시 빌려주는 일일 뿐이다. 마치 한 신용카드의 부도를 다른 신용카드 발급으로 막아주는 것과 같다. 유럽 경제와 유로의 불안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기타 문제 국가들의 침체된 실물경제와 적자 구조가 불식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그리스는 1100억유로의 지원을 받는 대신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3.6%에 이르는 예산적자를 2014년까지 2.6% 수준으로 낮추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이런 긴축은커녕 현재 GDP 대비 125%에 이르는 국가부채 수준조차 유지할 수 있을지 세계는 의심하고 있다. 그리스는 바로 포퓰리즘 정치가 망친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복지와 공공지출은 재정능력을 넘어 흥청망청 늘려져 왔고 생산보다 많은 소비가 계속됐다. 공공부문이 전체 경제의 40% 이상까지 자라 경제 활력을 이끌 민간경제가 죽었고, 2009년 무역적자는 428억달러로 수출 186억달러의 2.5배에 달한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도 포퓰리즘 공약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해당 지역 초·중·고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 공약 외에도 학자금, 일자리, 복지서비스, 서민금융, 지역개발 관련 약속을 여야 후보자들이 수도 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사람특별시’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한명숙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공약을 예로 들어 보자. 교육복지예산 10조원, 10만 생활복지 일자리, 5만 어르신 일자리, 친환경 무상급식, 10분 생활복지 서비스…. 물론 정치인들은 이런 공약의 이면(裏面)을 밝히지 않으니 유권자 스스로가 살펴야 한다.
첫째, 과연 이런 공약사업은 고용과 복지의 효과적 수단이 될 것인가. 20세기 후반 세계 선진국들은 복지와 고용 창출을 위해 정부 예산을 경쟁적으로 늘려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의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년 평균 27%에서 1996년 48%로 증가했으며, 이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경우 평균 경제성장률은 6.6%였다. 그러나 30∼40%일 경우 3.8%, 60%이상 1.6% 등 정부가 커질수록 성장률은 일관적으로 낮아졌다. 곧, 복지와 일자리 정부 예산은 필연적으로 민간기업의 투자, 고용의 역량을 파괴시켜 오히려 성장률 하락과 실업증대가 초래됐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 누가 이 공약의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포퓰리스트들은 한국의 국가부채는 36%로 OECD 평균 7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 어떠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 공통의 암적 문제가 돌이킬 수 없이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다. 정부 실패와 정치인들의 공약 남발로 부채는 해마다 늘어난다. 유럽발(發) 재정위기의 핵심 진원지인 그리스 같은 부채 국가가 생기면 전 세계의 평균 국가부채비율이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쇼 진행자 데니스 프래거는 “정부가 클수록 시민은 작아진다”고 말한 바 있다. 선거는 투표권으로 미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다. 국민 모두가 보다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