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로선수로 구성된 한국야구대표팀이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참패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대만에 지고 아마추어 대표인 일본에도 졌다. 금메달을 따서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능력 대신 군 미필자를 우선 선발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한국은 이와 같이 나라 이름을 빛낸 사람에게 병역면제를 나누어주는 나라다. 군대를 빼먹는 것이 곧 훈장이 되는 기이(奇異)한 나라다. 대통령과 병무청장이 국가유공자를 선정해서 징역에서 해방시키듯 병역을 풀어주는데 운동선수, 바둑기사, 무형문화재에 무용콩쿠르에서 상 받는 사람까지 모두 이에 해당된다. 국회에는 오늘도 한류 스타, 컴퓨터게임 선수 등 무려 17개 분야 2만5000여명의 ‘국위 선양자’들에게 병역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과거 침략국가에 싸여 있고 지금은 북한과 휴전 중이다. 아마 남한처럼 강한 군대가 필요한 나라가 지구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군대를 멸시함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전몰한 수십만 장병, 자원 지원해 산화한 학도병들의 용기나 그들을 기리던 정신은 잊히고, 사나이이므로 당연히 군대 간다던 앞 세대의 자긍심도 사라지고, 이제는 6·25 기념식도 하지 않는다. 좌경 친북 단체들은 과거의 반공정권에 싸잡아 군대까지 모욕하기 일쑤다. 북한을 감싸는 정권 아래서 한국군의 주적(主敵) 관계와 존재 이유는 모호해지고 군의 자존심이 소리 없이 무너짐이 오늘의 현상이다.
최근 대통령의 퇴역 지휘관과 군대 비하 발언은 이런 군(軍) 인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국군 통수권자는 국방 의무를 수행하는 모든 한국 군인의 수령 아닌가. 그가 “군대는 가서 썩는 곳, 군의 원로는 심심하면 사람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킨 사람들”이라 말한다면 어떤 젊은이들이 기꺼이 입대하고 목숨을 걸 것인가. 이제는 원정출산이나 일부러 수술해서 병역을 피하는 사람들도 비난할 바가 못 된다. 비록 실수라도 나와선 안 되고 국민에게 어떻게 사과해도 부족할 대통령의 발언이다.
병역은 분명히 우리 청년들의 심장부 같은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잡아먹는다. 동시에 국토 방위는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할 신성한 직무다. 따라서 군인을 어떻게 뽑고 대우해야 할 것인지는 국가 전체가 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이것은 적법한 국가조직이 우리 군사 여건과 현실 경제문제를 고려해서 장기적 수급계획을 세우고 국민의 합의를 구할 일이지, 선거철에 특정 정치인이 마구 줄이며 선심 쓸 일이 아니다.
그 어떤 군인이 되건 나라 방어를 위해 목숨을 맡기는 직무를 비방하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 100여 년 전 유명한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기 스스로의 안전 외에는 아무 일에도 싸울 의사가 없는 젊은이는 스스로 자유인이 될 기회를 상실한 비참한 존재”라고 설파했다. 자기희생의 열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 이상 성스러운 사회적 봉사가 있겠는가.
이런 국군의 운명을 도맡은 대통령이 할 일이란 무엇보다 이들의 가치와 자부심을 북돋우는 일일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 미국을 보자. 요사이 같은 연말 휴일을 접해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국내외의 군역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후방이 안전하게 지내고 있음을 국민에게 상기시키고 병사들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군대나 퇴역 군인을 폄훼함은 미국 정치가에게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북한은 어떤가. 그들은 군인부터 먹이고 대우하며 강성군대가 나라를 이끄는 선군(先軍)정치를 하고 있다. 이는 도대체 누구를 대적하자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남북 병사 간의 사기(士氣) 차이는 어떠할 것인가.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가장 걱정해야 할 문제다. 2007년 우리 국민은 향후 대한민국이 어떤 군대를 가질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