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207.3.4, 육군지 286호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영봉
국군장병께 보내는 편지
병사 여러분.
작년 말 저는 조선일보에“한국 군대는 쭉정이들만 가는 곳인가”라는 글
을 썼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과거 침략국가에 싸
여있고 지금은 북한과 휴전 중이라 우리처럼 강한 군대가 필요한 나라가
세상에 별로 없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가 군대를 기피하고 국군의 자존
심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나라이름을 빛낸 사람에게
병역면제를 상(賞)으로 나누어주고 군대를 빼먹는 것이 자랑이 되는 이
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 제 글에 동감하고 격려하는 전화, 이메일과 편지를 백통 가까이나
받았습니다. 그 중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이 전주교도소에서 수형(受刑)
중인 분에게서 받은 편지입니다. 이 분은“비록 몹쓸 죄를 짓고 무기형을
살고 있으나 내가 생각마저 없는 사람은 아니다, 한국군대는 강해져야
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줘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건 병역면제를 남
발하는 일은 반대한다”는 소감을 4장 편지지에 꼼꼼히 담아 보내주셨습
니다.
편지를 읽고 제가 감격했던 바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비록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국민
의 가슴 밑바닥에 국군에 대한 긍지(矜持)와 우정(友情)이 얼마나 두텁게
쌓여있는가를 보여드리려는데 있습니다. 국군의 명예가 도마 위에 오르
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흥분했고 교도소 복역자의 마음까지 흔
들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금쪽같은 2년여 세월을“군대에서 보내
는”청년병사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하고 있어서 건장한 청년들은 모두 군대를 가야 합
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에게나 인생의 심장부 같은 20대의 2년여를 군
대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한 낭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사 여
러분이나 저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를 완전히 낭비한다는 생
각으로 보낸다면 정말 고통, 좌절과 분노만 키우는 세월이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군대 속담이 있다는데 기왕이면 인생에 보탬
이 되도록“성취하고 자랑하며”보내면 보다 보람 있는 세월이 되지 않겠
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군대가 개인과 나라에 하는 역할’이라
는 재미없는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군대와 군인들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보겠습니
다. 국군은 6·25전쟁에서 거대한 희생을 치르고 공산화로부터 대한민국
을 지켜냈습니다. 휴전 후 아시아의 대공 방위전선에서 한국군을 파트너
로 기를 필요가 있었던 미국은 한국군을 현대화시키고 군의 간부와 장교
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훈련을 시켰습니다. 따라서 아주 후진국이었던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 군인들은 세계 속의 우리 위치를 가
장 먼저 보고 깨달은 선진집단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이후 나라운명을 좌지우
지했습니다. 나라를 빼앗아간 일본에게 국교를 터주고 그 대
가로 청구권자금을 받고 외자도 들여와 대외 지향적 경제개
발을 거창하게 추진했습니다. 국군의 장비개선과 달러획득
을 위해 한국군대는 월남전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이렇게 해
서 아프리카 저소득국에도 못 미치던 한국경제는 세계 11위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달걀을 쌓아놓은 듯 취
약하기 그지없던 국가의 안보상태가 이제는 반석(盤石)처럼
튼튼해졌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국군대는 군사는 물론 군사 외(外)의 영역에도 손
을 댔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공과(功過)와 시비(是非)
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군인들의 정권은, 당시의 나라여건과
국가목표 우선순위가 어찌됐건, 국민의 민주적 권리와 자유
를 억압하고 독재와 장기집권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과
오 때문에 오늘날 군정세력들은 다 물러가고 몇몇 대통령은
감옥에도 가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민주주의
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아마 우리가 지금까지도 1960년대
처럼 굶기를 밥 먹듯 하고 국가안보가 풍전등화(風前燈火)처
럼 위태하다면 우리는 그동안 민주화를 이룰 생각도 못했겠
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군 병사
들의 자부심과 사기저하로 이어집니다. 우리 50~60 세대는
“사나이는 당연히 군대를 가고 그래야 인간이 된다”는 자긍
심이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마지못해 군대에 가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못 느낀다면 그 일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아주 진부한 이야기지만 오늘날 후방의 국민들이 누구를 믿
고 편안히 매일의 생활을 영위하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언제나 도발적인 병영국가와 대치 중입
니다. 백여 년 전 유명한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자기
스스로의 안전 외에는 아무 일에도 싸울 의사가 없는 젊은이
는 스스로 자유인이 될 기회를 상실한 비참한 존재”라고 설
파했습니다. 자기희생의 열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
이상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병사
여러분이 먼저 스스로 이렇게 자신의 가치와 보람을 인정한
뒤에야 사회도 군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절 군대는 소년[boy]을 성인[man]으로 바꾸는
의례(儀禮)와 같았습니다. 따라서 입대 전날 으레 홍등가에
끌려가 총각을 떼는 의식을 치루고, 그렇게 군대를 다녀오면
그제야 합격정품의 대한민국 남성으로 인정받는 시절이었습
니다. 세월이 지나 26년간 학생을 가르치는 동안 제대복교생
에 대한 저의 이런 편견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복교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믿음직한 어른이 되어있고, 재학생처럼 시간
을 낭비하고 비현실적인 사고를 하지 않음이 어디에서나 쉽
게 발견됩니다.
군대는 병사 여러분께 생각보다 귀중한 자산을 물려줍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핵가족 및 온라인 생활, 과잉보호, 자기중심
주의 및 의존적 생활에 익숙한 신세대에게는 군대가 조직, 규
율 및 인내를 배우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고
(故) 케네디 대통령은“군대복무에 필요한 능력을 가지지 못
한 젊은이는 먹고살기에 필요한 능력도 갖추지 못할 가능성
이 높다. 오늘날 군대에서 거부당한 사람은 내일의 핵심 실직
자가 될 것[1963]”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때“군에서 어려움을 견디며 환경을 극복
하는 방법을 배웠다. 야전삽 하나와 곡괭이 하나로 벙커를 지
어냈다. 전역 후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군에서 단련된‘하면 된다’는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
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만약 군대
가 없었다면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발전도 제대로 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끝으로 우리 50~60대는 국군아저씨께 정기적으로 위문편지
를 보내는 것을 생활로 삼았던 세대임을 알려드립니다. 나라
를 위해 싸우다 전몰하신 장병들, 지금도 일선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절대 잊지 말라고 초
딩 때부터 아주 귀 따갑게 들어왔지요. 지금 병사 여러분이
읽을 글을 쓰자니 옛날 위문편지 쓰던 때가 생각나서 이렇게
오래간만에 편지 쓰는 척 해봤습니다. 모쪼록 남은 복무기간
을 즐기고 자랑하며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