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時評> 일본 닮아가는 한국

yboy 2012. 11. 20. 14:14

  기사 게재 일자 : 2012년 11월 20일
<時評>
일본 닮아가는 한국
김영봉/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지난주 일본 경제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작년 대비 -3.5%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잇달았다. 대선 정국이 온통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에 빠진 오늘 언론이라도 이런 경각심을 갖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실상 요사이 우리는 일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초고속의 고령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추락하는 설비투자율, 급속한 자산 디플레이션, 소비침체 등 한국 경제의 증상은 ‘제로성장시대’ 일본의 판박이가 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2~3%로 떨어지고 있으며, 최근 미국의 경제연구소 콘퍼런스보드는 10년 내에 1.2%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1년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3141달러(유엔 통계), 한국은 2만1052달러다. 여기서 멈춘다면 우리는 일본의 절반만큼만 성장하고 늙어버리는 국가가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많은 다른 이점도 있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최강자들과 치열하게 승부하며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기계·전자·소재 등 많은 부품기업도 경쟁력을 키워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중이다. 지금 우리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제대로 개방·경쟁·규제완화를 이룰 경우 차세대 방대한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지척의 중국에는 거대한 예비 유학생·관광객·의료 수요자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청년들은 폐쇄적·수동적인 일본인에 비해 주체할 수 없이 자율적·개방적이고 발전 지향적이다. 한국 경제가 이 자원들을 조금만 더 활용한다면 곧 일본을 추월하고 고용 창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동력들을 꿰맬 정치다. 과거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는 매번 리더십과 사명감을 가진 대통령을 선출해 일본의 수구적 정치에 비할 바 없이 생산적이었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모든 국민에게 1만2000∼2만 엔의 현금을 살포하고 심지어 복역 중인 죄수들에게까지 지급했을 정도로 타락했다. 민주당은 국가 예산의 48%를 빚으로 충당하고 국가채무가 GDP의 200%를 돌파할 상황에서 매월 2만6000엔의 자녀 양육수당을 주겠다고 공약하고 집권했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이런 일본이 무색할 정도로 타락했다. 이번 대선에서 무상 보육·급식·의료와 아동·노인·실업자 수당 및 자영업 폐업자 수당 등 상상 가능한 모든 복지 지원 공약이 발표됐다. 재벌 개혁, 대기업의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 제한, 기업이익공유제, 공무원 대폭 증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고용할당제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공약도 총동원됐다. 과거 일본 정치가 아무리 못났어도 대기업 징벌, 이익공유제, 고용 할당 같은 자해적 반기업 공약을 한 적은 없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나라 경영에는 무식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말 일본처럼 제로 성장의 시대가 닥치면 어찌할 것인가. 기업수익률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고 대기업은 쌓아놓은 돈으로 겨울나기를 위해 초긴축으로 견딜 것이다. 내수는 폭풍을 맞을 것이며 자영업자와 서비스 사업자들의 폐업이 줄을 이을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추락하고 아무도 안 살 것이다. 일본의 3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0.03%라고 한다. 모든 국민의 소득은 해마다 줄어들고 중산층 금리생활자는 나락에 빠질 것이다. 국민의 어떤 사업도 성공이 힘들어 모두가 위험을 극소화하는 초식 사회가 될 것이다. 빚에 몰리고 생활고에 찌들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쌓일 것이다.

모든 국민이 의기소침(意氣銷沈)해지고 미래 희망을 잃는 사회다. 과연 이것이 ‘행복한 사회’ ‘사람이 사는 사회’인가? 이런 전환기를 무대책으로 맞는 대통령은 누가 되든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길 수밖에 없다.

최근 많은 설문조사에서 경제성장이 복지증대나 경제민주화보다 우선이라는 국민의 여론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4주 남짓한 대선 기간에 이를 좋은 기회로 포착해 구체적 비전, 대책과 공약으로 제시하는 후보가 결국 국민의 마음도 얻고 역사에 옳은 대통령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