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전제자(專制者)에게 굴레를 씌워 권력을 빼앗아오는 수백년 간의 과정을 가졌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의 본질은 개인의 자유, 권리와 책임을 키우는 것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법치(法治)다. 그러나 동양의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단기간에 수입된 것이라 아직 제왕시대의 ‘왕도(王道)사상’에 길들여있다. 곧, 선거로 뽑은 정치인이 ‘좋은 민주주의’도 만들고 ‘국민통합’도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인치(人治)다.
왕도정치는 왕이 백성의 주인이던 시대의 유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민이 법을 만들고 이 법이 대통령 이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치의 시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말로는 법치를 외쳤지만 실상 범죄자를 사면하고, 신용불량자를 구제대출해주고, 약자의 불법을 용인해주고 특정집단, 특정지역에 선물을 나눠주는 정치에만 골몰해왔고 국민도 이것에 매달린다.
이 제왕정치가 곧 ‘좌파적 시혜(施惠)정치’다. 이 경향은 경제위기일수록 더욱 강해지며 이런 시혜경쟁의 결정판이 된 것이 지난 대선이었다. 우리가 박근혜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국민통합정치’도 아마 이런 것 일 게다. 그러나 ‘대통합’은 지도자의 이른바 탕평(蕩平)정치나 대화, 타협, 관용 같은 것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우선, 과거 대화와 타협은 ‘법과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는 시민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과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통합은 오히려 수많은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을 희생자로 만들어 종국에 더 큰 국민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놈의 헌법” “정당하지 않은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대화 타협 관용이 민주주의 핵심 원리”라고 말해왔는데 이후 국민 분열이 얼마나 심해졌는가.
다음, 국민간의 갈등은 세계 어디서나 존재하며 이는 단기간에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포퓰리즘 정치로는 절대로 해소 불가능함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이를 확대시키는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 갈등을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합의’로 ‘관리’하는 것이지 지도자가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이 절차에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와 책임으로 참여하고 그 결정은 법치로 보장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갈등도, 그것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이든, 국민이 선진국가 수준의 민주적 준법적 시민의 자질을 가지지 않는 한 해소할 수 없다.
금년 대선에서는 돈 선거가 없어지고 SNS의 흑색선전도 먹히지 않는 획기적 정치 선진화를 이루었다. 다음 대선 때쯤이면 아마 우리는 놀랄 만큼 뛰어오른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이 과정을 손상시키지 않고 가능하면 촉진시킴이 박근혜 정권의 시대적 사명이 될 것이다.
첫째, 박근혜 통합정치는 ‘공정한 법치능력’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법치(rule of law)라 함은 ‘누구도 법 위에 없고, 누구에게나 법이 적용됨’을 의미한다. 그 첫째 대상은 한국의 반(反)법치세력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한민국의 국기(國基), 안보기반 등을 흔들려는 종북 집단과 전교조, 덕수궁 텐트장의 각종 불법 파업자와 농성자, 언론의 조작자인 문화방송(MBC)파업자 등 불법과 선동을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수행의 도구로 삼으려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정부는 이들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해 우리사회 법치와 공권력의 권위가 세워질 수 없었다. 이번에 대통합의 명분으로 이들도 관용의 대상이 되면 법과 양식(良識)을 믿는 시민을 피해자로 만들고 종국에 국민을 오히려 분열시키는 통합이 됨을 알아야한다.
둘째, 오늘날 대기업 재벌가 국회의원을 포함해 검사판사를 줄기줄기 인척으로 엮고 온갖 연고(緣故)와 권세를 활용해 범법이 있어도 절대로 감옥에 가지 않는 ‘특권층’이 있음을 국민이 모두 알고 있다. 이들은 물론 앞으로 평등한 법치의 대상이 되어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나 패배자도 법치의 예외자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생계형 구제를 통치자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비판 못 하게 하는 여론의 금기(禁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지원은 그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사후에 부족한 수확을 보태주는 데 그쳐야 한다.
서민에게 불법반칙을 허용하는 것은 오히려 서민을 상습적 범죄자로 기르는 길이다. 서민 약자라고 법치를 풀어주면 생계형 범죄는 서민의 권리가 된다. 범죄자는 범죄자를 기르며 서민범죄자는 서민을 등쳐먹는다. 서민은 우리 사회 법의식, 법치사회를 만드는 기층(基層)이다. 이들이 범법자가 되면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법 무시하는 자가 뽑히게 될 것이다. 서민과 약자일수록 법치를 가르쳐 그와 자손을 정직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에게 이롭고 정의로운 길일 것이다.
끝으로 대통령 자신이 법을 지켜야한다. 대통령 사면권은 과거 임금님이 베풀던 사면령(赦免令)과 같은 것이다. ‘누구도 법 위에 없고, 누구에게나 법이 적용되는’ 국민주권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사면받는 자도 사면하는 자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단지 아주 숭고하고 불가피한 사연이 있을 경우 최소로 행사됨이 마땅하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대통령들이 총 709명을 사면했으나 그때마다 논란이 들끓었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들은 제왕처럼 사면잔치를 벌여왔다. 필자가 집계해보니 김영삼 정부는 총 704만명, 김대중 정부는 1038만명, 노무현 정부는 438만명, 이명박 정부는 2009년 8·15 사면까지 재벌기업회장, 정치인 농어민·서민·자영업자·음주운전자 등 총 467만명을 사면했다. 4명 대통령이 17년간 2650만명을 풀어준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 절반이 범법자, 사면대상자가 되는 나라가 어떻게 법치국가인가. 대통령의 사면은 분명히 그가 지키기로 선서한 법치를 찢는 행위다. 대통령이 법 위에 서면 국민 개개인도 자신의 법을 내세울 유혹을 받을 것이다. 야당, 민노총, 시민단체와 전교조의 막무가내 독선이 언제부터 극심했는가?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과거 정권과 같은 통치자 사면행위를 일체 없앤다면 국민은 정권의 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