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정기국회가 열린 지 석 달이 넘어 이제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우리 국회는 그간 국사(國事)다운 국사를 하나도 처리한 일이 없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이 국회에 돌아온 이유가 시청광장의 천막당사 대신 여의도 의사당을 대 정부투쟁의 마당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당이 한 일은 국정감사로 기업인과 공직자를 마구 불러 대기시키고 호령하고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감사원장 후보자들을 욕준 것밖에 없다. 남은 기간도 미상불 ‘대선관련 의혹’ 특검실시요구 따위의 정치투쟁으로 채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회는 사실상 무법·파업하는 국회다. 지금 우리경제와 민생은 말 그대로 도탄(塗炭)을 헤매는 중이다. 빈사 상태에 빠진 부동산경기의 활성화법, 투자와 고용 증대에 필수적인 외국인투자촉진법, 기타 경제 활성화와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 당장 국회에서 처리됐어야 할 법안만 100개가 넘는다. 국가예산·결산의 처리는 대한민국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의 하나다. 작년도 결산안은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처리토록 국회법은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국정원댓글관련 장외투쟁과 국회의사 보이콧 때문에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민주당은 새해 예산안도 국정원 특검을 받아들여야 심사하겠다하니 내년 예산안도 법정처리시한인 12월 2일까지 제대로 심사될 리도 처리될 리도 없다.
후안무치한 국회의원들
세상 어느 나라에 이렇게 후안무치하게 헌법적 의무를 포탈하고 입법 활동을 중단하는 무법·무뢰한 국회의원들이 있겠는가. 이들은 “우리를 대리해 국사를 처리해 주시라”고 국민이 수억 원의 연봉·수당, 기사 딸린 승용차, 9명의 보좌관, 기타 200개가 넘는다는 특권으로 모시는 분들이다. 향후 이 인물들이 국회의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국회가 나아질 수도 없다. 못난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이란 괴물을 만들어서 국회가 소수 정치패당의 인질이 되어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국회 시스템과 국회의원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백년천년 장래를 위해 지금 반드시 시정시켜야 할 일이다.
첫째, 국회선진화법을 폐기시켜야한다. 이 법은 헌법 49조에 규정된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의 원칙을 위배하여 국회의원의 60%가 동의하는 법안만 상정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소수정당의 허락이 없는 한 국회가 할 일이 없게 된 것이다.
소위 국회선진화법은 작년 총선 직후 새누리당의 기회주의적 의원들이 야당과 함께 제의해서 태동한 것이다. “18대 국회가 대화·타협·소통이 아니라 직권상정·쇠사슬·전기톱·최루탄 등으로 기억된다” 며 야당의 동의 없이는 실질적으로 국회의안 상정을 못하게 한 법이다. 도대체 쇠사슬 해머 전기톱 최루탄을 들고 나온 자들이 누구인가? 폭력배들에게 흉기를 들 필요가 없도록 열쇠를 맡긴 것이니 도둑에게 집을 내준 처사 아닌가. 따라서 국회가 무용지물이 될 것은 삼척동자가 봐도 알 수 있었는데 이를 통과시키고 여당 대표들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감격했다. 이 법은 국회기능을 죽이는 법이니 선진화법은커녕 ‘국회사멸법’이라 해야 맞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이제야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야단인데, 이것이 헌법소원 대상이 되느니 마느니 갈팡질팡하고, 당내 소장파들이 법 개정에 반대하고, 무엇보다 야당동의 없이는 법안 상정자체가 불가능하니 그 장래가 빤하다. 국회가 못하면 국민이 국민투표를 청원해서라도 지금 파사현정(破邪顯正)해야 한다.
다수결은 세계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국가의사결정의 기본규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선호와 목적을 가진 국민의 공동체인 국가사회에서 이 규칙이 무너지면 어떤 갈등도 해소될 수 없고 모든 갈등이 증폭하고 폭력이 분규해소의 주 수단이 되는 무정부(Anarchy)상태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록 인정할 수 없어도 그 결과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민주주의사회 시민이 되는 것이다.
좌파, 민주주의원칙 무너뜨려
좌파들은 이 무구(無垢)한 민주주의원칙을 항상 무너트리려 해왔다. 민주당의 대선불복, 광우병폭동, 용산방화, 부안원전, 밀양송전탑, 제주도해군지의 무법난동사태 등이 그 사례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주의파괴자들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뒤엎으려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런 폭력은 단호한 공법의 집행으로 다스려야 민주주의국가사회가 지켜질 수 있다. 소위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이런 상식에 무식·무견과 비겁함이 발로된 법이다.
둘째, 국회의원들을 새 정치인이 되도록 바꿔야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거대한 특권계급이 된다. 민주당이 여름 내내 국회를 보이콧해도 ‘무노동 무임금’은 언급조차 된 적이 없다. 그 많은 세비와 특권도 모자라 여야가 비상설 특별위원회라는 것을 슬그머니 만들어 회의 두어 번 열고 수천만 원의 활동비를 챙겨가는 염치없는 부류이기도하다.
걸핏하면 ‘감히 국회의원에게-’라고 눈을 부라리는 게 대한민국의원의 현주소다. 불법시위를 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회기 중 매번 의석을 비워도, 예산심의와 국정감사를 얼렁뚱땅하고 쪽지예산을 날려 예산을 낭비해도 징계 받거나 실직 파면되거나 체포되지 않는다. 보좌관을 제 인척과 지인을 마음대로 쓰고 이들을 자기선거구 관리하는 데에 부리고도 누구하나 괘념치 않는다. 국정감사나 청문회 즈음 출판기념회를 열어 영수증 없는 돈 수억원을 거두는 위력(威力)강매·탈세를 해도 국세청 검찰청이 눈감아 준다. 이 하나하나가 민간 기업이나 다른 공직자가 했으면 당장 목이 잘리거나 감옥 갈 일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대중교통비만 국가지원을 받아 지하철로 출근하며, 개인비서나 보좌관 없이 소속 정당 비서의 도움을 받고 시민을 접촉해 법안을 만들어 제안한다. 우리보다 두세 배 소득이 높은 스웨덴 의원 월급은 우리 돈으로 천만 원 정도다. 국회식당서 직접 음식을 날라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고, 면책특권을 포함해 어떤 특권도 안 누리고 이런 특권을 요구함이 부당하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것이 스웨덴을 비롯해 의회정치발상지인 유럽 대부분 국가의원들이 누리는 지위며 자세다.
작년 대선 때 민주당은 세비 30% 삭감을 공약하고 새누리당은 대대적 정치개혁을 공약했지만 이후 여야는 세비를 한 푼도 깎지 않았다. 국회가 스스로 자정(自淨)하기를 바라는 것이 물고기를 나무에서 낚자는 것과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그러나 국민도 이제 참을 만큼 참았고 이런 미개적 국회의원 시대도 끝물이 돼야할 것이다.
국민을 대표해 국가 일을 하는 것처럼 성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성직을 사리(私利)와 당파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자들을 축출해 내는 일을 이제 국민이 선도해야한다.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그 범법과 태만을 감시·응징하고 그 지위· 대우를 정하고 운영하는 법과 독립적 기관을 국민이 청원하고, 필요하다면 국민투표를 동원해서라도 설치하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