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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세종市 - ‘충청人’이 바라본 세종시 문제[월간조선 2009/11]

yboy 2009. 12. 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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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호

[집중분석] 기로에 선 세종市 - ‘충청人’이 바라본 세종시 문제

정치인들의 邪心과 背任행위에 충청도민이 말려들어
국민투표로 세종시 문제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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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은 헌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지금 짓는 행복도시는 실질적으로 ‘新首都’ 설계를 그대로 가져온 것. 때문에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

행정복합도시는 국가적 憂患덩어리가 될 것임을 빤히 아는 한나라당이 표 계산, 파벌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에 팔아먹은 것이나 마찬가지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베를린으로 수도를 정한 다음 16개 부처 중 6개를 본에 잔류시켜 혹독한 비용을 치르는 중. 양 도시에는 250개의 이중 사무소가 운영되고, 공무원 통근과 이사 보조비로 연간 2억 유로가 지출되며, 751t의 공문서 수발이 발생


⊙ 세종시는 정권이나 야당이 ‘거대한 국가적 害惡’을 저지른 역사상 최대의 公職 배임행위
⊙ 盧武鉉(노무현), 해양부장관 시절 “해양부가 부산으로 옮기면 서울에 따로 사무실을 둬야 하고
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할 것” 이라고 발언(2000년 9월)
⊙ “최선의 방법은 국회와 청와대 사이에 중앙관청가를 만드는 것”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중에서)
⊙ 2005년 1월 신행정수도 특별법 국회에 제출됐을 때 朴槿惠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의원들 독려해
통과시켜

金榮奉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 1944년 서울 출생, 충남 천안에서 어린 시절 보냄.
⊙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콜로라도대 경제학 박사.
⊙ 동아일보 기자,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상공부 상역국 수출계획과장 등 역임.
⊙ 저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떼한민국> <신경제체제론> 등 다수.
2009년 2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 제정을 촉구하는 연기군민 총 궐기대회가 연기군 조치원역 앞에서 열렸다.
“당신, 나도 충청도 사람이지만 충청도에 당신 같은 상×은 없어!”

지난해 12월 필자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행정복합도시문제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던 중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 일이 있다. 충남 연기군에서 온 ‘행정도시사수 대책위원’이란 사람이 앞에서 줄기차게 야유를 해대는 바람에 흥분해서 외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험악했던 판에 발표자가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뱉었으니 토론장은 난장판이 됐지만, 곧 이어진 필자의 사과로 사태는 그럭저럭 수습됐다. 필자에게는 반성과 함께 지역적 정체성을 묻게 한 해프닝이었다.

비록 不知不識(부지불식)간에 나온 말이나 과연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고 외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충청도 문제를 다루며 충청도 사람으로서 판단하고 있는가? 局外者(국외자)로서 판단하고 있는가?

먼저 필자의 내력부터 밝히고 충청도 정치인 및 세종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려 한다.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6·25 사변을 맞아 충남 천원(현재 천안)으로 내려갔다. 原籍(원적)은 충남 천원군 북면 은지리 20번지, 이곳 사촌형님 댁에 얹혀 살다가 목천면 남화리(현재 독립기념관 정문이 있는 자리)로 옮겨갔다. 목천국민학교 5학년 여름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 이래 서울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만 33세 때 결혼해 분가하며 본적지를 서울 반포동으로 옮겼다.

先親(선친)은 6·25 때 사망해 100% 충청도 분이고, 사촌형님 가족은 아직도 어사 朴文秀(박문수)의 古宅(고택)이 있는 은지리에 산다. 조상이 묻힌 先山(선산)도 충청도에 있다. 그러나 현재 필자는 고향에 땅 한 평의 권리도 없으므로 충청도의 이익에 대해서는 냉정한 사람인 셈이다.

사는 곳, 가진 것만큼 마음도 중요하다. 피란 시절 우리 가족은 거의 비렁뱅이 같아서 서럽고 돌아보기 싫은 일을 태산같이 겪었다. 따라서 이분들은 지금도 그곳 일과 섞이기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나 필자는 철이 없었고 공부를 잘한 덕분에 학교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너무나 배고프던 그때 아이들이 도시락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주어 그야말로 十匙一飯(십시일반) 모은 내 밥의 높이가 친구들 밥보다 더 높았던 일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충청도 사람은 구제 못할 이기주의자인가?

여하간 초등학교 때의 4년여, 感性(감성)이 익던 시절 나는 충청도 아이였으니 내 의식 속에 충청도가 숨어 있고, 이것이 때 아니게 가끔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충청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몰염치나 부끄러운 作黨(작당)행위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일이 많았다.

필자는 이번 세종시 문제를 정치인들의 邪心(사심)과 背任(배임)행위에 충청도가 말려든 전형적인 사례로 본다. 이 과정에 휩쓸려 특별한 이익도 보지 못하는 충청도민이 ‘몹쓸 사람’이 되는 듯해서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 예컨대, 신문 방송이나 세종시 문제의 토론장에서 충청도와 야당 정치인들이 “충청도민이 분노하고 심판할 것이다, 폭동이 일어나면 어쩔 것이냐”고 위협할 때마다 고개를 젓게 된다.

이것은 충청도 사람을 모욕하는 말이다. 충청도 사람은 구제 못할 이기주의자라서 이런 일에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과천 사람은 양반이라서 송두리째 관청을 빼앗기고도 아무 소리 안 하는가? 그만한 일로 생업을 때려치우고 民亂(민란) 일으키는 것이 진짜 충청도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충청도민을 이용하려고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또는 그렇게 일을 벌이는 것 아닌가.

행정타운으로 존재하는 세종시는 텅 빈 도시가 될 것이고, 오히려 기업도시 쪽으로 지금이라도 방향을 전환한다면 충청도민에게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오해건 진실이건 조그만 私益(사익) 때문에 국가 大義(대의)를 희생시킨다는 말을 들어도 좋을 충청도민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충청도 이익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 도지사, 지역정당 대표들이 실상은 지역주민의 진정한 이익보다 행정기관 이전의 ‘정치적 실적’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다. 여하간 충청도 사람들이 세종시에 관련된 사실을 많이 알아야 그들의 이익을 지키고, 특별한 의도를 가지는 정치집단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필자는 세종시에 관한 사실을 널리 알리려 이 글을 쓴다. 그러나 누구보다 충청도분들이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이는 충청도에 얽힌 필자의 ‘작은 인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충남 연기군 종촌리 ‘밀마루 전망타워’에서 바라본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현장.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치도시’

세종시(행정복합도시) 문제의 모든 근원은 정치인들이 만든 ‘정치도시’라는 데 있다. 흔히 정치적 사업은 國利民福(국리민복)보다 정치집단의 私慾(사욕)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종시가 그 전형이다.

세종시 건설은 특히 정권이나 야당이 다 같이 ‘거대한 국가적 害惡(해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도 고의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상 最大(최대)의 공직 배임행위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 문제는 이 도시 탄생의 정치적 배경을 통해 거의 다 파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도시는 2004년 수도 이전이 違憲(위헌) 결정난 후 3개월 만에 마련한 ‘행정도시 건설 특별법’에 의해 탄생됐다. 盧武鉉(노무현) 정권의 경우, 처음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적 집념에 따라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중앙행정기관만 수용하는 행정복합도시는 노 전 대통령 자신부터 철저하게 否定(부정)한 사업이라 그의 계산에 있었을 리가 없다. 2000년 9월 해양부장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부산 출장을 간 자리에서 해양부의 부산 이전을 건의한 현지 유지들에게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장관 취임 후 30일 만에 39차례 출장을 갔는데 그중 3분의 2가 국회, 정당, 국무회의, 청와대 등과 관련됐다. 해양부를 부산으로 옮긴다면 서울에 따로 사무실을 둬야 하고 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변한 것이다.

그 뒤 모든 정황은 노 정권이 위헌 결정된 수도이전의 미련을 못 버리고 ‘행정복합도시’의 이름을 빌려 ‘수도이전사업’을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세종시 건설이 추진됐음을 보여준다.


本心은 행복도시가 아니라 수도 이전

2005년 당시 여야가 합의한 정부이전 규모는 국무총리, 총 18부의 행정부 부서 중 12부4처2청 및 산하기관 49개, 공무원 9992명이다. 정부과천청사의 경우 5500여 명 공무원이 약 40만m²(약 12만 평) 청사에 근무하고 있다.

청와대가 빠진 행정부 일부 이전은 충청도 소재 기존의 도시를 개발해 수용할 수 있었으나, 노무현 정부는 행복도시를 과거 수도이전계획보다 오히려 더 키워서 설계했다. 당초 마련한 수도이전용 토지 7041만m²(2130만 평)는 7305만m²(2210만 평)로 확대해 수용했고, 인구 50만명을 목표하는 도시지만 공간은 서울의 절반 규모에 이르는 광대한 정치·행정 중심도시가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큰 행정도시가 지어지는 것에 대해 당시 야당과 언론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盧英敏(노영민·충북 청주) 열린우리당 의원의 의원총회 발언은 정권이 이런 도시를 짓는 本心(본심)을 그대로 공개한다.

그는 “일단 12층 규모의 건물을 짓지만 기초를 튼튼히 해 나중에 16층으로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으며, 당시 이 당의 많은 의원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정부기관도 모두 따라가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행복도시 건설이 확정된 뒤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행정부만 있는 세종시가 불합리함을 천명했다. 2007년 2월 취임 4주년을 맞아 인터넷신문협회 소속사들과 합동회견한 자리에서 “행복도시는 걱정하지 말라. 정권이 바뀌어도 전임 정권에서 한 일을 뒤집을 수 없다. 이름이 꼭 행정도시가 아니라도 (입법, 사법 등) 중앙기관이 다 함께 가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같은 해 7월 20일에 열린 행복도시 기공식에서는 “꼭 행정수도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정부부처는 모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순리며 효율적이다. 청와대는 서울 시민에게 돌려주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노 정권은 憲裁(헌재) 판정과 국민의 눈을 속이고 新(신)수도 代役(대역)으로 세종시를 건설한 셈이며, 애당초 진정한 행정중심도시를 건설할 의도는 없었다.

이런 노 정권의 행정복합도시 發議(발의)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은 더욱 기막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야당이어서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행적에서는 국가의 장래이익에 대한 고려를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행정복합도시의 전신인 ‘신행정수도건설법’이 발의됐을 때도 처음에는 절대 반대했으나, 2003년 갑자기 당 소속 국회의원 194명 중 164명이 찬성해서 국회를 통과시켰다. 충청권 국회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반대하면 탈당하겠다고 위협했고, 당 지도부가 “다음 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어 수도 이전에 필요한 예산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결국 수도 이전이 무산될 것”이라고 의원들을 설득해서 국회 통과가 이루어진 것이다.


朴槿惠 대표와 한나라당도 共犯
세종시를 발의하고 추진해 온 노무현 정권 못지않게 이를 용인한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도 세종시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 사진은 2004년 11월 25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

그 후 수도 이전이 위헌 결정나고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한나라당은 다시 다수당으로서 그 운명을 결정하게 됐다. 당 의원총회에서는 “새만금 공사의 10배가 넘는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대구로 내려가던 朴槿惠(박근혜) 대표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든 무슨 결정을 하든 최선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 공공기관 이전 등 문제가 있으니 이때 우리 의견을 계속 얘기할 수 있다”고 설득해 또 통과시켜 주었다.

결국 행정복합도시는 국가적 憂患(우환)덩어리가 될 것임을 빤히 아는 한나라당이 표 계산, 파벌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에 팔아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당시 대통령은 국민을 속였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권을 배신했다. 이런 정치인들의 합의는 정책 발효의 절차적 형식은 갖추었으나 당연히 국민이 맡긴 공직의무를 逋脫(포탈)한 것이다. 적어도 도덕적으로 지탱할 수 없는 정치행위이므로 지난 국회 합의의 효과를 정지시키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물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종시의 기본 목적은 국무총리와 중앙행정기관 9부2처 1만여 공무원을 옮겨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천리마를 도륙해 食肉(식육)으로 먹는’ 어리석은 행위로 비유한 바 있다.

첫째, 국토균형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다 한들 어떻게 정부의 머리와 몸통을 서울과 세종시에 분리시켜 달성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일인가.

둘째, 21세기의 시장경제에서 행정부 이전으로 얼마나 국토균형발전을 이룰 것인가.

향후 수도분할이 되면 우리는 문명국가 어디에도 없는 기괴한 정치·행정실험을 해야 하는데, 國政(국정)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직자들이 이런 계획을 짰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국정혼란, 행정비효율, 공무원 사기저하, 경제적 낭비, 국민의 불편·불만 등 행정기관나누기가 야기할 국가적 사회적 비용은 실로 상상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만 추려 열거해 보자.


수도분할로 정부의 업무수행능력 더욱 떨어질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같이 해양수산부 장관이 한 달에 39차례 청와대, 국무총리, 국회 등과 회동했다면 기획재정부, 지경부 등은 어떠하겠는가. 한국의 국정은 대통령, 국무총리와 장관을 뿔뿔이 흩어놓고도 잘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국가위기가 돌발했을 때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들이 시급히 회동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 달에 대여섯 차례 열리는 국무회의 때마다 장관과 이를 보조할 공무원들이 줄줄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국회가 열리면 장관, 차관, 국장은 물론 과장, 사무관까지 국회서 온종일을 보내야 한다. 장·차관은 서울에 주거시키고 국장 이하 중앙부처 공무원은 세종시에 배치하고, 이렇게 머리와 몸통을 갈라놓으면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겠는가.

작년 촛불집회, 광우병대책, 금융위기 등에서 보듯 행정부는 위아래 전 부서가 통합적,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두 도시 행정시스템이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겠는가.

현재 대전에 있는 조달청, 문화재청, 중소기업청의 청장들은 업무협의와 관련부처, 국회 일로 근무일의 거의 절반을 서울 나들이에 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국가행정 낭비를 全(전) 중앙행정부서로 확산시켜야 하겠는가.

▲서울과 수도권은 기업, 금융, 법률, 교육, 기타 한국의 핵심·첨단의 인프라와 인력이 몰려 있는 곳이다. 정부 중앙부서는 각종 기관, 기업의 임직원, 학자, 전문가, 외국인들과 노상 만나서 당면문제를 풀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민간 전문가들이 귀중한 시간, 높은 기회비용, 불쾌함을 치르고 행정도시에 내려가 관리를 대면하고 싶겠는가.

실상 우리나라가 세계수준의 도시를 일부러 피해 행정도시를 만든다는 사실은 글로벌경쟁, 세계화, 선진화 등 외향적 지향을 멈추고 향후 對內(대내)지향전략(inward-looking strategy)으로 전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낮은 정부 효율성은 그간 우리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으며, 2009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서 한국은 국가경쟁력에서 57개국 중 27위, 정부효율성은 36위를 했다. 수도분할로 우리 정부의 업무수행능력이 더욱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盧武鉉의 이율배반
2005년 11월 행정도시특별법 각하 소식이 전해진 후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있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과 현지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행복도시 찬성자들은 이런 행정비효율이 IT시대 화상회의 같은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극단적으로 모든 공무원이 在宅(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정부청사는 필요없다는 주장과 같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對面(대면)협의를 안 하면 모든 公私(공사)의 의견수렴과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직장에 나가는 것이다. 하물며 국정과 같은 엄중한 결단과 보안이 필요한 사안을 어떻게 화면회의에 맡길 수 있겠는가. 서울과 과천의 부처 간 업무조정을 위해 83억원을 들여 만든 정부의 화상회의시설은 2003년 참여정부 이후 단 두 차례만 가동됐다고 한다.

▲2006년 건설교통부가 설문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부부처가 행정복합도시로 이전할 경우 과천공무원의 41.7%가 ‘본인만 이사할 것’이며 17.6%가 ‘가족 중 일부만 이사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기러기 家長(가장) 공무원들이 겪을 외로운 삶, 피곤한 여행, 떨어지는 능률, 정부에 대한 불평과 좌절감이 어떠하겠는가?

향후 세종시가 과천 수준의 생활여건을 갖추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낮에만 살아 있는 을씨년스런 오피스 타운이 될 것이다. 그동안 공무원과 정부 출입자들은 볼모로 잡혀 있는 꼴이 된다. 각 행정부처는 서울에 출장소를 설치할 것이고, 그 행정기능을 해마다 늘릴 것이고, 공무원도 늘어날 것이다. 산림청과 특허청은 대전에 이전한 후 서울사무소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실상 이런 문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세종시를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니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쓴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서는 “정부부처가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국회와 청와대 사이에 중앙관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 선진국가가 정부기관 배치를 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백악관을 중심으로 의회와 17개 정부부처가 반경 1km 안에 밀집해 있다. 영국 역시 의회와 17개 정부부처가 반경 1km 안에 있고, 프랑스도 파리에 대통령궁, 의회 및 20개 행정부처가 밀집해 존재한다.

단지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베를린으로 수도를 정한 다음 16개 부처 중 6개를 본에 잔류시켜 오늘날 혹독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양 도시에는 250개의 이중 사무소가 운영되고, 공무원 통근과 이사 보조비로 연간 2억 유로가 지출되며, 751t의 공문서 수발이 발생한다.


어떤 비용 치르건 ‘수도분할’ 막아야

정책조정과 의사소통의 결함, 본 소재 기관의 사기저하 및 비능률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지금 독일에서는 본 정부를 베를린으로 통합하는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일부러 행정부를 120km 밖으로 쫓아낸다고 한다.

행정부서가 지방으로 옮기면 민원과 업무협조로 출입하는 기업의 임직원, 교수, 연구원, 시민단체, 외국인, 일반시민들도 시간과 비용, 불쾌함을 치르면서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 특허청은 대전에 있으나 현재 등록된 변리사 4000여 명 중 100여 명이 대전에서 활동할 뿐이다. 나머지 변리사, 학자, 기술자, 회사원들은 관리를 보러 대전까지 내려가야 한다.

민주주의 정부는 公僕(공복)으로서 가능한 한 국민에게 가까이 가야 마땅하다. 이렇게 官(관)이 행정수요자로부터 멀리 가서 국민에게 없어도 될 경제적 피해와 불편을 강요하는 것은 官尊民卑(관존민비)며 정부의 의무를 포탈하는 행태다.

따라서 세종시를 크게 짓건 작게 짓건 행정부 이전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 이것은 이미 이뤄진 투자나 약속, 충청도민의 압력 같은 것 때문에 밀려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오늘날 충청도의 이익집단이나 정당들은 세종시 사업비 22조5000억원 중 5조4000억원이 이미 집행된 점을 들어 이제 때가 늦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잘못된 결정을 수정하는 일은 10조원이 지출됐을 때도 20조원이 지출됐을 때도 오히려 이르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수도가 갈라지면 20~30년 후 우리 후배들은 지금의 몇 배의 갈등과 비용을 들여 다시 정부를 합친다고 고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론자들은 ‘한국에서 국토 균형발전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앞의 모든 수도분할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논리는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한국의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한 것은 지역불균형 발전보다 한국의 인구밀도가 높은 탓일 수 있다. 우리 수도권이 밀집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처럼 농촌과 지방이 밀집된 곳도 세계 어디에서 찾기 어렵다.

인구밀도를 보면 8만2000㎢에 3200만명이 거주하는 중국의 충칭(重慶) 市(시)가 인구밀도 390명으로 한국(490명)보다 20%나 낮다. 조금 과장하면 남한 땅은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라서 한쪽에 도심이 있고 다른 한쪽에 약간 덜 붐비는 郊外(교외)가 있는 형편이다. 이런 나라에 브라질, 호주와 같이 땅 넓고 인구 빈약한 나라에서나 통하는 국토 균형논리가 과연 합당한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국토균형이론

비록 지역균형발전이 이 시대의 至上(지상)과제라고 해도 세종시는 우리나라 국토균형에 도움이 되는 도시가 아니다. 충청도는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균형지향 정권 기간 중 가장 성장의 혜택을 본 지역이기 때문이다. 2001∼2005년 지역내총생산(GRDP) 증가율을 보면 충남은 연평균 7.4%로 전국 최고며 광주(4.1%), 대전(3.9%), 부산(3.8%), 전북(3.5%), 전남(3.3%), 강원(2.8%), 대구(2.1%) 등에 비교할 수 없이 후한 성장을 누렸다.

충청남도는 이미 광역수도권에 붙은 생활권이 됐고, 충청도 발전은 오히려 수도-충청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확대시킨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충청남도가 더 이상 劣等(열등)지역이 아님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국가균형정책 때문에 행정도시를 만든다면 충남이 아니라 강원, 영남, 호남에 건설해야 마땅하다.

오늘날 행정도시는 세계 어디서나 인구나 경제를 끌어오는 수단이 되지 못함이 증명되고 있다. 세종시 11배 면적인 캔버라는 96년 전에 호주 수도가 됐지만 아직도 인구 32만명이고, 53년 전 건설한 세종시 4배의 브라질리아도 현재 37만명에 그치고 있다.

근자에 한국의 지역발전을 이끈 도시는 아산, 광양, 파주, 안산 같은 기업도시다. 따라서 충청도가 진정한 지역발전을 도모하려면 행정기관 이전보다 기업유치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노무현 정권의 국토균형이론은 21세기 글로벌 경쟁 환경과 우리 국토·인구 조건을 거역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유럽 국가들도 때때로 국토 분산정책을 쓴 일이 있으나 유럽연합(EU)이 이루어진 뒤에는 모두 대도시의 경쟁력을 육성하는 국가전략으로 전환했다. 런던,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브뤼셀 등 유럽 각국의 도시들은 지금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강력한 집중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도 나라가 아니라 서울, 인천, 부산 등을 내세워 동아시아 대도시와 기업과 자본유치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다. 今(금)세기에 들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대도시 경쟁력 향상에 분주하지만 한국은 수도권의 경제집중을 의도적으로 견제하는 국토·산업정책, 교육, 의료, 금융 등 서비스산업의 反(반)시장, 反(반)개방정책으로 대도시의 국제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왔다.

2005년 말 기준 홍콩에 아시아지역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은 1167개, 싱가포르는 350개지만 서울은 11개에 불과하다. 부산, 대구 등은 21세기 들어 도시 생동력을 거의 잃었다. 이 시기에 수도를 희생시켜 지역균형을 이루겠다는 극단적 폐쇄주의 국가운영전략이 가당할까.


세종시는 거대한 부실덩어리 될 것

유엔인구기금(UNFPA)은 2007년 현재 4860만명인 한국 인구가 2050년까지 630만명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의 도시화 비율(90.5%)은 이미 포화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기존의 도시들에도 생존경쟁과 도태가 불가피한 시대가 왔다. 이런 시점에 노무현 정부가 행정도시를 비롯해 일시에 16개나 되는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충청도에 세종시는 선물이 아니라 거대한 부실기업을 떠맡는 것일 수 있다. 세종시는 지금 상태로 추진될 경우 20년, 30년 뒤 50만명은커녕 20만명도 못 채우거나, 그저 정부의 지원을 쥐어짜 주변지역의 인구와 자원을 빼앗아오며 근근이 살아남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과 비용은 궁극적으로 충청도민이 져야 한다. 그러므로 충청도민이 세종시가 처한 오늘의 조건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충청도는 우선 정부가 제시하는 지원이나 청사진이 세종시의 장래를 보장 못함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세종시를 무한정 지원할 수 없고, 그 약효도 믿을 수 없다. 지금 보다시피 정부기관은 언제 빈 껍데기가 되거나 도망갈지 모른다. 따라서 ‘自立(자립) 아니면 도태’라는 생존원칙부터 세우고 남보다 우월한 ‘도시의 資質(자질)’, 즉 자원, 인력, 서비스 및 성장전략의 차별화를 이루지 않는 한 생존·번영의 길을 찾을 수 없다.

세종시의 불행은 ‘정치도시’로 태어나 처음부터 ‘선물 챙기기’와 ‘남의 탓’에 익숙해짐으로써 依他(의타)적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충청도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 더 문제가 커지기 전에 국가당국과 협의해 ‘세종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다고 믿는다. 도시규모를 합리적 수준으로 축소하고, 기왕 수용한 땅은 뒷날 지방자치단체가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지자체 재산으로 비축시킨다.

세종시는 주변에 과학, 기술, 교육, 산업도시가 성장하고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이 구비되는 빼어난 입지조건을 가지므로 행정도시보다 기업도시나 교육특화도시로 가는 편이 훨씬 유리해 보인다. 향후 충청지역 정치세력이 중앙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려면 뜬구름처럼 내방객이 오가는 중앙관청을 포기하고 지역차별화를 유도할 수 있는 특권적 국가정책을 요구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2009년 2월 충남도의회 의원 25명이 국회청사 앞에 모여 2월 임시국회에서‘세종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교육특구, 혹은 공영방송국 이주가 바람직

정부를 두 동강내는 것은 言語道斷(언어도단)이다. 그러나 이미 건설이 시작된 세종시를 백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충청도를 달랠 다른 선물이나 도시형성의 수단을 줘야 한다. 그간 ‘국가발전’ ‘선진화’ ‘바른 사회’ 등의 이름을 가진 여러 민간단체에서 이 문제를 걱정하고 토론했다. 마치 동네에 문제아가 들어오니 죄 없는 주민들이 모두 모여 그를 달래고 아부할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간 서울대를 이주시키고, 과학·교육·산업·기업 도시로 기능을 바꿔야 한다는 등 여러 제안이 나왔다. 필자도 세종시를 ‘교육 특구’로 만들거나, 행정기관 대신 공영방송국을 이주시키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방송국 이전은 충청도에 꼭 공공기관을 보내야 할 경우 중앙행정기관 대신 KBS나 MBC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내는 것으로 정부가 협상해 보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사들은 노무현 정권이 공기업 지방이전을 할 때도 빠졌다. 그러나 방송사는 중앙행정부처와 달리 꼭 수도에 머무를 필요가 없으며, 지방이전의 피해도 정부기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작을 것이 분명하다. 세종시 측으로서는 미디어, 영화, 스포츠, 문화, 예술, 연예, 기타의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산업에 거대한 투자·생산·고용의 유발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CNN 본부는 애틀랜타에 위치하며 영국의 BBC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방송 사업부문의 지방 이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BBC는 현재 샐퍼드 키스(Salford Quays, Greater Manchester)에 2011년 스포츠, 아동 등 5부(BBC Children’s Learning, Sports, Radio Five Live, BBC Future Media and Technology)를 떼어내 수용할 미디어 시티(Media city)를 짓는 중이다. 미디어 시티에는 2300명의 BBC 직원이 고용될 예정이지만 지역경제에는 향후 5년간 1만 개의 고용과 10억 파운드의 생산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교육특구는 세종시를 국가의 교육통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마치 경제특구와 같이 완전히 해방된 ‘교육 자유지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세종시도 살리고 한국교육도 살리는 이른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 한국의 교육은 막대한 시장수요를 가지고 있으나 평준화 틀과 각종 제재에 묶여 그 잠재력이 꼼짝없이 갇혀있는 신세다. 이것을 풀어 교육을 시장자율에 맡긴다면 한국은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처럼 세계적 교육상품을 생산하고 세계적 교육허브로 자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것이 장래 우리 교육이 가야 할 필연적 과정일 것이다.


결단력이 중요하다
정운찬 총리의 발언 이후 논란이 거세진 세종시 문제와 관련, 자유선진당 의원 및 당원들이 2009년 9월 22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세종시 원안사수 1000만명 서명운동 출범식을 갖고 세종시 원안 실천을 촉구했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는 현재 進退兩難(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진 세종시 문제의 해결을 명분 삼아 최소한 특구 형태로라도 교육 자유화지역을 만들고 실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다른 한편, 세종시에는 교육특구가 향후 막대한 교육시장을 흡인할 절호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연 30조원에 달하며 국민의 교육열은 거의 狂(광)적이다. 세종시에 국제고, 외고, 과학고, 자사고, 특목고 등 어떤 고등학교, 대학교라도 마음껏 세우게 하고, 그 정원, 입학 및 재원조달을 완전히 자율 결정하게 해 보라. 아마 생각지 않게 많은 학교와 인구 유입이 일어날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분당 일산 등이 2000년 前後(전후) 비평준화 지역에서 평준화 지역으로 바뀌면서 그 교육인구가 강남과 목동에 유입돼 집값 폭등 사태가 일어났다. 학교는 숙소, 식당, 서점, 여가시설 등 행정부 유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지역사회에 경제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다. 만약 이대로 된다면 세종시는 미래 교육의 전면 자유화시대 한국교육시장을 선점해 시장지배자가 되고, 한국 최고의 교육도시가 될 교두보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세종시 수정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 제시보다 정부, 여당이 어떤 결단력과 실천의지를 가지냐는 것이다. 그간에는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세종시에 대해서는 他地(타지) 사람들이 입도 뻥긋 못하도록 충청도 사람들은 이 논의를 차단해 왔다. 따라서 위의 제안들은 세종시 문제를 걱정하는 개인이나 시민집단이 사사로운 모임에서 제시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며, 정부가 公論(공론)의 場(장)을 마련하면 앞으로 많은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고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鄭雲燦(정운찬) 총리 임명을 계기로 세종시 문제가 불거진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문제해결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세종시 수정논의는 한나라당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그간 이 당의 행태는 창피스러움을 넘어 不可解(불가해)의 지경까지 왔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초 “새만금 열 배의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행복도시건설을 반대하다가 저희끼리 파벌싸움을 벌이고 얄팍한 黨利(당리)계산을 해서 이를 합의해 준 사람들이다. 소위 국회의원이 국가적 재앙이 되는지 빤히 알면서 법안을 통과시켜 주는 행위 이상으로 심각한 공직 사보타주가 어디 있겠는가?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정부가 행정복합도시를 위헌 판정받은 신수도보다 훨씬 키워 짓는 對(대)국민 사기행위를 할 때도 보면서 침묵했고, 그간 수많은 우리 사회 인사들이 세종시의 불가피한 비극을 제기할 때 침묵으로 일관했다.

최근 새로 임명된 총리 덕분에 다시 세종시 처리가 정치적 쟁점이 되자, 당의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이 번갈아 “당론은 세종시 원안대로”임을 천명해 또 찬물을 끼얹었다. 국회의원 재선거와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또다시 국가 大事(대사)를 희생시키자는 당의 기회주의가 발동한 때문일 것이다.

향후 한나라당의 거대한 국정의무 포탈 이력은 세종시 역사와 함께 기록될 것이다. 良識(양식)을 가진 집권당 의원이라면 이 당의 노선과 관계없이 국가의 우환덩어리 처리문제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끌려다녀선 안된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은 세종시가 국회의 합법적 절차를 얻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원안수정이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가들이 국민이 준 대표권을 횡령하고, 국가에 해독이 되는 일을 고의로 저지른 稀代(희대)의 공직의무 배임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정부·여당이 국면돌파를 못 하거나 안 할 경우 누가 주도하든 국민 의사를 직접 묻는 절차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은 헌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지금 짓는 행복도시는, 비록 행정수도의 이름을 가지지만, 실질적으로 ‘신수도’ 설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반쪽 수도’의 부작용은 수도 이전 이상으로 걱정이 되는 문제다. 그렇다면 ‘수도 분할’ 역시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지 않겠는가.

그간 세종시 문제는 충청권 정치집단에게 끌려 좌지우지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국가사업이 언제까지나 특정 정치세력의 利害(이해)에 떠밀려 다닐 수는 없다. 국민투표는 이러한 지역이해집단의 의사를 인구비례로 제한시키는 점에서도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충청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대포 지역이기집단’의 이름을 얻고 있을 터인데, 이것은 충청인으로서 참지 못할 일이다. 충청인들이 누구보다 세종시 문제로 얻는 바와 잃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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