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중앙대 교수·경제학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재기는 넘치나 절조 없이 관직을 탐하던 대표적 인물이 화흠(華歆)이다. 그는 어렸을 때 고결한 선비로 이름난 관녕(管寧)과 같이 수학했다. 두 사람이 하루는 한 돗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고관행차의 풍악소리가 요란했다. 관녕은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으나 화흠은 한동안 정신을 놓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에 화흠을 비루한 인물로 본 관녕이 칼을 꺼내 함께 앉았던 돗자리를 반으로 자르며 “자네는 내 벗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의’에 의하면 복(伏)황후가 조조를 독살하려다가 발각됐을 때 화흠은 스스로 나서 황후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질질 끌고 갔으며, 황후 소생 아들들을 칼로 난도질했다고 한다. 한(漢)나라의 말년 황제 폐위에도 그는 선봉에 섰다. “지금 같은 난세에 폐하가 살아 있는 것이 위왕(曺丕)의 덕이니 그에게 선양(禪讓)함이 위왕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어이없는 강변을 해서 옥새를 강탈하는 제일 공을 세웠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원래 존경받던 교육학자로서 교육의 자율성, 수월성과 대학의 경쟁력을 죽이는 평준화 교육을 비판함이 소신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 분이 교육행정의 수장이 됐으므로 궤도를 이탈한 교육정책이 이제 조금은 바로잡히리라고 누구나 희망했을 것이다. 인간만이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실로 교육정책 이상 중요한 국가대계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장관이 된 후 그의 소신은 “오로지 벼슬하는 것”으로 바뀐 것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평생 학문과 교육으로 덕망을 쌓은 분이 입관(入官)하더니 오히려 특목고를 죽이고 좋은 대학 없애는 일의 전도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학에 고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할 내신 반영 비율을 50%까지 높이라고 강요하며, 복종하지 않으면 연구비 지원도 깎고 교수 충원도 안 해주겠다고까지 말하게 됐는가. 뒷날 그가 반(反)지성 정권의 선봉대장으로 21세기 한국 교육을 망친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걱정된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자율권 상실이 교육행정 권력자 때문만은 아니다. 엊그제 152명의 대학총장들이 청와대에 들어가 소외계층 특별전형을 11%까지 확대하라는 지시와 함께 대통령으로부터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는 훈계를 듣고 왔다고 한다. 오직 영산대 총장 한 분만이 문제점을 말하고 나머지 총장들은 재정 지원을 늘려 달라는 청원을 주로 올렸다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1987년에는 노태우 정부가 과거 반정부운동으로 희생된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지시를 대학에 내렸다. 그동안 학사징계 또는 제적된 학생들을 복교시킴은 물론, 장학금과 기타 학사편의를 모두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래서 F학점을 받고 퇴출됐던 운동권 학생들이 그들의 ‘권리’를 찾으러 학교에 나타났다. 이들은 수업 받고 시험 칠 능력이 없었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던 만큼 총장의 지시하에 담당교수들이 적당히 학점을 주고 졸업시켰다.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권리가 생기고 굴종하면 권위를 잃는 법이다. 당시의 상황이 특별하기는 했지만, 학문과 자율을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기관이 면학보다는 불법과 정치운동에 상을 주는 전례를 만들었다. 그 이래 대학은 법치나 제재와는 무관한 지역이 됐다. 학생들이 툭하면 대학본관을 점거하고 교수들을 가두고 기물을 파괴해도 대학당국은 그저 수수방관하는 처지가 됐다. 오죽 권위를 잃었으면 교육부에 들어간 대학총장이 앉지도 못한 채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예산 타령만 한다”는 핀잔을 듣고 왔겠는가.
민주주의 아래서는 각 기관이 스스로 권위를 찾아야 한다. 대학총장이 못하면 대학교수가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 책동자나 포퓰리스트 정권에 휘둘려서 스스로도 망신하고 교육담당자로서의 사회적 직무도 유기하게 된다. 이번 사태에 즈음해 고려대를 위시해 대학교수들의 움직임이 있다 하니 다행이다. 과거처럼 일과성 과시(誇示)에 그치지 말고 교수 일체가 이를 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