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빈(孫 )은 BC 4세기 사람이다. 그는 제(齊)나라 장군 전기(田忌)에게 공자(公子) 대신(大臣)과의 마차경주 내기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 재주를 인정받았다. “세 번 경기 중 두 번만 승리하면 이깁니다. 장군의 3등 말을 상대의 1등 말에 경주시켜 포기하고, 1등 말을 상대의 2등 말에, 2등 말은 3등 말에 승부시켜 이기시오. 그리고 이번에는 천금(千金)을 거시오.”
중국에서는 2300년 전에 이미 마차경주가 상류층의 오락으로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사실(史實)이다. 바퀴는 경제적 기술의 상징이다. 그런데 중국을 코밑에서 상국(上國)으로 모신 조선왕조에서는 100여 년 전 나라가 망할 때까지 바퀴를 사용했다는 흔적을 볼 수 없다. 얼마나 국가를 폐쇄하고 피폐시켰으면 국민이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살 수 있을까. 경기장, 연극무대, 목욕탕 등 백성의 위락(慰樂)생활을 보여주는 유적도 없다. 그저 거대한 민초가 어떻게 초개처럼 굶어 죽어 나갔나 하는 기근의 기록만 즐비할 뿐이다.
조선의 피폐는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올린 억상(抑商)-숭유(崇儒) 정책 때문이라는 설(說)이 유력하다. 고려 때만 해도 중국은 물론 아라비아상인까지 내왕해 북적일 정도로 국민이 부유하고 상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태조가 이씨 자손이 천년만년 누릴 계책을 묻자 정도전이 “백성이 부(富)를 쌓으면 힘이 커져 고려처럼 왕권이 위태해진다”며 상업과 화폐 유통을 억제하도록 헌책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교사상으로 백성을 얽어매어 임금만 우러르도록 가르치게 권하기도 했다.
북한을 보면 한반도에 역사가 이토록 되풀이될 수 있는가 경악하게 된다. 지구촌 국가들이 유사 이래 가장 역동적으로 개방, 경제팽창과 민주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북한은 봉건시대 전제왕조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지도자들이 국민의 귀를 막고 배를 굶기고 여행도 도망도 못 가게 하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北)에 개방 개혁이 없다면 오늘날의 북한 꼴은 아마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북 정권에게 인민은 어떤 존재인가. 지난 수해 때 물에 빠진 농장원 차향미씨는 구조자의 손에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부터 넘겨주다가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 강형권씨는 5살 난 딸이 물에 빠지자 딸을 버리고 초상화를 지켜냈다. 박종렬씨는 아내와 자녀를 산사태에 잃으면서 초상화부터 먼저 건져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런 사실들을 선전하며 “오늘 자기의 존재도, 값 높은 존엄과 행복도‘수령 결사옹위의 길’에서 찾는 것이 조선인민의 인생관”이라고 자랑했다.
북한 인민이 이런 비참한 노예의 삶에서 탈출하는 길은 개방과 개혁뿐이다. 이를 통해서만 국민이 주체로서 나라를 건설하고 세계의 투자가 몰려올 수 있으니, 너무 빤해 논설할 가치조차 없는 진실이다. 실상 친북정권이 만들어낸 ‘햇볕정책’구호 자체가 북 정권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내자는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에 앞서 내린 말씀이 “남북 경협을 북한 경제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단숨에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금지시켰고 이 단어는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아예 삭제됐다. 북 정권의 신호 한 방에 남북경협의 목적은 하루아침에 방향을 튼 것이다.
개혁 개방을 뺀다면 개성공단이나 향후 안변 남포 해주 등에 들어설 공단은 그저 북한 노동자의 땀공장(sweat shop·노동 착취 공장)밖에 할 역할이 없다. 북 정권은 포주처럼 그들이 소유하는 노동력에게서 수입을 뜯어내고, 이 돈은 다시 인민을 얽어매는 그물이 되도록 투자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서명해 축복해 주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북 인민의 압제를 찬동해야 하는가.
조선왕조는 망했지만 북의 왕조는 아직도 창창하다. 누가 그동안 북 정권을 지탱시켜 주었는가. 이 시대에 한반도에 같이 사는 남한 국민들이 어떻게 낯을 들고 북한 인민에게 동포라고 말할 수 있는지 기이(奇異)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