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스크린쿼터는 모든 극장에 1백46일간 국산영화 상영을 강제한다. 대한민국에 문화적 의미나 외국업계의 위협이 없는 산업이 없을 리 없으나 오직 영화계만 이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것이 집단이익이 아니라 '국익'이 걸린 문화 주권 수호 장치라고 강변한다.
스크린쿼터의 논리를 보자. 첫째, 취약한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공약해 국회 결의가 있을 때 영화계는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제 시장점유율이 50%에 근접해 세계 최고수준이 됐으나 영화계는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의무상영 일수를 줄일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죽을 때까지 실패할 걱정 없는 사업이 있겠는가.
스크린쿼터가 주는 것은 경쟁 없는 피난처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은 경쟁을 통해서만 다져진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영화계가 정말로 언제 어디서나 할리우드 영화를 대적할 국제경쟁력을 원한다면 그들 스스로 보호막을 떨치고 나와 진검승부를 벌일 것을 자청해야 한다.
둘째, 스크린쿼터가 한국 문화를 지켜주는 보루라고 한다. 대체 누가 영화인들에게 대한민국 문화 수호의 성직을 맡겼는가. 문화는 우리의 산천과 도시, 삶의 형태이며, 역사.문학.예술 생산활동을 통해 국민 모두가 창조하는 것 아닌가. 필자는 국내에 몇 개 조폭영화가 떴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우수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유럽에 할리우드 영화가 넘친다고 해서 유럽이 미국의 문화적 속국이 됐다고 믿을 유럽인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스크린쿼터를 가장 강력하게 시행하는 중국(상영일수의 3분의 2)은 이념의 다원화를 금지하는 일당(一黨) 국가다. 이 밖에는 브라질(49일).파키스탄(55~3백10일).멕시코(30%)만이 시행하는데 이들이 문화강국인지 필자는 모르겠다.
영화계는 또한 프랑스 영화계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과거 1백12~1백40일로 규정한 스크린쿼터를 실제 집행도 못하고 폐지한 나라다. 독선적.배타적인 프랑스의 스크린쿼터 충고가 무슨 무기가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영화계는 한.미 투자협정(BIT)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한.미 BIT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 손익은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국기업의 국내 지위와 분쟁타결 원칙을 규정하고 있어 특히 한국 같이 노사 간 위치가 불안한 나라에서는 투자유치에 우선 요건이 되는 협정이다.
더 황당한 것은 미국과 BIT를 체결한 나라가 방글라데시.몽골.스리랑카 같은 제3세계 최빈국이거나 동구권의 사회주의 붕괴국가들뿐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은 현재 북미(LAFTA).중남미(NAFTA)제국과 자유무역지역을 형성하고 있고 그 협정하에 투자협정이 자동 포함돼 있다. 싱가포르.호주.칠레와도 이미 BIT를 체결하고 다음 단계 FTA로의 발전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은 그들끼리 통합해 미국을 견제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단계 미국과의 BIT가 스크린쿼터에 발목잡혀 있는 것이다.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제일 잘 나가는 집단이 영화인들이다. 이들의 집단이기주의가 통하는 나라에서 어떤 사회적 갈등이 풀릴 수 있겠는가.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2003년12월03일(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5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