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대기업-고소득층 증세
▼ “대기업 때리기 희생자는 서민” ▼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대선이 가까워지며 정치가들의 포퓰리즘 행태가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1% 고소득자와 슈퍼 대기업에 증세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기업 출자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을 발의했다.
이 제안들의 본심은 ‘경제적 승자(勝者)를 때려 표를 얻자’는 네거티브 포퓰리즘이다. 정치가들이 대기업을 악(惡)으로 지목하면 국민은 대기업을 타도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저주받는 땅에서 대기업은 결국 고사(枯死)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가의 ‘왕따’를 받는 기업들이 국내에 남아 세금을 낼 이유도 없다. 대기업들이 사라지면 일자리 투자 복지재원 등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대기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얻어맞는 존재지만 세계 어디서나 투자, 고용 및 세수 창출의 견인차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와 정부가 법인세 인하, 인센티브 제공, 기타 갖은 유인수단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는 이유다. 우리 정치가들이 부자·대기업 징벌까지 득표수단으로 삼는 것은 경제상식 부족은 물론 리더십 자질까지 얼마나 저급한 수준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선 판은 지금 여당 야당 가릴 것 없는 복지공약 살포 향연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이제 유럽형 ‘복지대국의 길’에 확실히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이 ‘따뜻한 의도’는 세금이 걷히고 재정이 건전해지는 경제에서나 가능하다. 우리 정치가들의 문제는 이들이 과연 이런 상식의 바탕 위에 복지문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복지재정에는 하나의 철칙(鐵則)이 존재한다. 증가를 거듭해 거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한번 내준 복지는 ‘국민의 권리’가 된다는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성격에 연유한다. 미국에서도 복지제도는 ‘권리(entitlements)’로 통칭되는데, 이는 ‘사유재산권’과 같이 국민이 취득한 권리임을 의미한다. 국민들로부터 이 권리를 다시 회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복지재정회계에는 새 청구서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 우리처럼 정치의 위세가 등등한 나라에서 이런 상식이나 재정의 기율(紀律) 따위가 존립하겠는가.
오늘날 재정지출이 무한대로 늘어나 국가 파탄과 국민 타락의 양상을 보이는 사례가 그리스 스페인 등이다. 이 두 나라는 금년 봄 똑같이 52.1%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국가경제가 추락해 실업이 늘고 복지재원이 고갈되면 최대 희생자는 이처럼 복지의 대상인 서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된다. 복지주의가 스스로 제 눈을 찌르는 모습 아닌가.
정치가들의 호의로 만들어진 복지 국가가 실제로 국민에게 만족한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아닌지는 각종 사실이 판단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년 27%에서 1996년 48%로 증가했다. 이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6.6%였지만, 30∼40%일 경우 3.8%, 60% 이상은 1.6%로 낮아진다. 즉 정부가 커질수록 성장률은 낮아졌다.
조사를 시행한 미국 상원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이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난 것은 거의 복지지출 때문이며, 복지지출 증가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간부문에서의 생산성 성장을 잠식했다고 밝혔다. 과도한 복지지출이 민간기업의 투자, 고용 역량을 파괴시켜 성장률 하락에 따른 빈곤 및 실업증대를 가져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요즘 무역규모가 연 1조 달러를 넘는 대한민국 호의 앞날도 먹구름에 쌓여있다. 국민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얼마나 몰아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은 오직 나라의 곳간뿐인데 복지 및 민생 재정 수요는 앞으로 확대일로를 걷는 반면 경제성장 잠재력 하락으로 기업과 국민의 담세능력은 점차 낮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적자재정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선후보나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호소할 것은 첫째도 성장, 둘째도 성장이지 무책임한 기업 때리기나 복지 살포의 약속이 아니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 필자 소개 ::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30여 년을 재직했다. 현재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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