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無정부적 민주주의’에 신물난다

yboy 2011. 11. 29. 16:53

 

문화일보 포럼 2011/11/29 19:44
포럼 게재 일자 : 2011년 11월 29일(火)
‘無정부적 민주주의’에 신물난다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김영봉/세종대 명예교수 경제학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민주당 의원들의 장외 투쟁이 시작됐다.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를 했으므로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고 시위투쟁으로 이를 무효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주말 손학규 대표, 정동영 의원이 맨 앞줄에 선 광화문 불법 집회장에서는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에 계급장을 뜯기고 주먹과 발길질로 얻어맞는 무정부(無政府) 사태가 발생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회가 한미 FTA를 성사시키는 방법에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의 단독처리밖에 없었다. FTA 비준동의안은 2008년 12월 야당이 망치와 전기톱까지 동원한 폭력 저지과정을 뚫고 여당이 단독 상정해야 했다. 최근 23일 동안은 민주노동당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아예 농성해 폐쇄시켰다. 그간 민주당 지도부가 이런 민노당에 코가 꿰여 모든 협상 제안을 거부하고 FTA 및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괴담 유포의 주체가 된 것은 국민 모두가 지켜본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그간의 지리멸렬 과정을 접고 ‘국익의 관점’에서 비준동의안의 단독 처리를 강행했다. 대한민국은 통상국가다. 먹고사는 것, 국민의 일자리, 국민 복지를 해결해 줄 국가 예산 모든 것이 무역에 달려 있다. 다음달 중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게 되며, 한미 FTA로 5000만 한국인이 활동할 경제영토가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의회민주주의 절차는 국민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이해가 충돌하는 국사(國事)를 토의·절충하되 더 이상 합의 불가능한 의안은 표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국론분열과 극한투쟁이 극심한 나라에 이런 ‘다수결’ 규칙이 없다면 국회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국민이 한나라당에 169의석을 위임한 의미는 FTA 같은 합의 불가능한 국가대사를 다수결로 관철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늦었으나마 국민의 대의기관 역할을 했고, 의회민주주의 규칙을 따른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그렇게 FTA가 싫다면 모든 선진국 국회의원처럼 국회에서 당당히 반대 투표를 하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산 심의를 포함해 온갖 산적한 의정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 국회가 제 뜻에 안 맞는다고 국회를 포기하고 장외 투쟁하겠다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법치와 국회의원의 의미를 알겠는가. 이런 집단을 ‘수권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스웨덴의 경제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그의 명저 ‘아시안 드라마(1969)’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저개발국은 연성국가(Soft States)라서 서방의 민주주의가 좋은 체제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성국가란 국가기관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나라다. 따라서 국가 발전을 위한 규율 실행이 불가능해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가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50년 전 후진국 상황이 오늘날 폭력 정당에 인질로 잡혀 불임(不姙)국회를 만든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국회의원들은 공천과 재선, 파당 이익에 함몰돼 국익이 안중에 없고 국회는 의사당에서 일상화하는 농성, 폭력에 최루탄 폭발까지 아무것도 자율 해결할 수 없다. 오늘날 좌파들은 끊임없이 국가기관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보수들은 이런 무정부적 민주주의에 신물을 내고 있다.

민주당이 추종하는 민노당은 최근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강령에 담은 ‘통합진보정당’을 출범시키는 중이다. 60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명문 정당이 이런 정당에 끌려 다닌다. 그 안에 아직도 지각 있는 국회의원이 남아 있다면 지금 국회에 돌아와 당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