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박원순 후보의 수수께끼 같은 삶

yboy 2011. 10. 19. 16:52

 

문화일보 포럼 2011/10/19 16:09
기사 게재 일자 : 2011년 10월 19일
<포럼>
박원순 후보의 수수께끼 같은 삶
김영봉/세종대 석좌교수 경제학

1849년부터 30여년 간 런던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궁색했다. 좁고 어두운 싸구려 셋집의 가구는 모두 낡아 부서진 것이고, 가족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살았다. 때때로 마르크스는 코트와 구두를 전당잡혀 며칠간 집 안에 갇혀 있었고, 한살 된 딸아이가 죽었을 때는 관(棺)을 살 2파운드를 못 구해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은 이 가난을 항상 ‘악독한 부르주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당시 마르크스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로부터 받은 송금과 원고료 수입은 영국 하급노동자 임금의 3배 정도였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실상 중산층처럼 살 수 있었지만 돈이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의 피아노와 댄스 레슨 등으로 탕진했다. 이 혁명가의 아내는 금박으로 ‘폰 베스트팔렌 남작부인’이라고 우아하게 인쇄된 편지지를 애용했다. 마르크스 분석자들은 이런 그의 현실사회 부적합성과 무절제성이 자본주의 파괴에만 집착한 그의 사상과 행동의 근원이 됐을 것으로 추론한다.

최근 알려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내력에도 그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범한 인물임을 가늠케 하는 사건이 연속 출연한다. 10여년 전 행방불명된 작은할아버지의 ‘호적 양손’으로 들어가 형제가 6~8개월 방위병역 혜택을 얻었다는 사실, 요즘처럼 전문가도 어려운 서비스업계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부인이 인테리어 사업체를 설립하고 1년도 안 돼 대기업의 발주회사로 성공했다는 사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딸이 법대에 편입했는데 법학부에 미대생 편입은 2002년 이래 308명 편입생 중 처음이라는 사실, 서울대 사회계열에만 2개월 다닌 박 후보가 ‘서울법대 입학 시민운동가’로 온 세상에 알려진 사실….

한국의 보통사람에게 이런 행운이 하나라도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이 모든 능력 중 압권은 서울시장 후보로 검증받으면서도 이 논란들을 ‘아무것도 아닌 사실’로 눙치고 넘기는 능력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공직후보자를 검증하는 이유는 그의 위선과 호도(糊塗)의 자질이 언제인가 반드시 그의 공직행위에 반영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민은 박 후보의 모든 생활 중 경제생활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선관위에 제출된 그의 부채는 5억8814만원으로, 현재 예금 등을 빼고 3억70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 서초동 61평 아파트에 보증금 1억원 월세 250만원에 세 들어 살고, 한 달 채무이자 294만원, 자녀 생활비 290만원, 2대의 차량 유지비 등 모두 합치면 월 최소 1500만원의 생활비가 들 것이라고 한다. 정말 마르크스 같은 삶이다.

주변에 박 후보 같은 사람이 산다면 우리는 그 삶을 기이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겠지만 돈을 맡기거나 물건을 사고팔 상대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후보에게 서울시를 맡긴다면 시민들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박 후보의 부인은 능력 있는 사업가가 되고 딸은 전도 유망한 법학도가 됐는데 서울 시민도 그런 기적 스토리를 나눠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마르크스의 가족 신세가 될 것인가. 생전에 마르크스는 굴 같이 좁은 집에서 죽도록 파이프 담배를 피워 댔는데 일곱 자식 가운데 세 아이가 폐렴, 기관지염 및 결핵으로 죽었다.

박 후보는 당선되면 2년간 서울시 부채의 27%, 7조원을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동시에 공공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고, 초·중등 무상급식을 실시하며, 대학생등록금 대출이자를 지원하고, 유아 전용 어린이집을 서울시 각 동에 2곳 이상씩 872곳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무릇 그의 곡예 같은 살림살이와 변설을 믿는 시민이라면 이런 공약을 믿고 투표할 것이다.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저작자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