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 소수정권 실패의 교훈

yboy 2002. 10. 26. 11:10


청(淸)의 강희(康熙) 황제가 등극했을 때 중국은 피지배 민족(한·漢)과 지배 민족(만·滿) 간의 갈등으로 사회 불안과 경제적 피폐가 극에 달했다. 이러한 때 강희제는 한족의 협조를 얻어 운남·복건·광동의 한인 삼번(三藩)왕의 반란을 평정하고 만주인의 중국 지배를 완성했다. 그가 중국인의 마음을 산 것은 만주인의 토략(討掠) 행위를 가차없이 징벌하고, 냉소와 배타로 만인정부를 대하는 한인 사족들을 정성으로 회유하여 등용한 때문이다.

강희 지배의 60년간 경제는 극성하고 국위는 선양됐다. 외몽고와 티베트를 정벌하고 러시아의 남침을 저지했으며, 황하의 둑을 완성하여 중국을 외침과 고질적 홍수 피해로부터 해방시켰다. 이 모든 것은 황제가 믿을 수 없는 사명감과 노력으로 오직 선정(善政)에만 관심을 기울인 때문이다. 그는 수시로 시정을 잠행하여 백성과 관리의 동태를 친히 살피고, 지방관이 올린 엄청난 양의 상소에 붉은 먹으로 깨알같이 어의(御意)를 단 것으로 유명하다.

동이 트는데도 계속 주비(朱批)를 다는 황제에게 밤을 같이 샌 대신이 쉴 것을 청하자 강희가 말했다.

“짐이라고 몸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좋은 줄 모르겠는가. 그러나 짐은 만인(滿人) 황제이다. 농사지을 줄도 모르고 싸움만 일삼는 만인들을 생각한다면 짐이 어떻게 잠시라도 나태할 수 있겠는가.”

강희를 끊임없이 채찍질한 것은 바로 ‘소수민족의 군주’라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민족이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성군(聖君)이 되었다. 무엇보다 한인들에게 공정했던 그의 노력이 중국으로 이주해온 300만 만주인에게 무한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는 건국 이래 처음 탄생한 소수 호남의 정권이다. 많은 사람이 김대중 개인보다, 필자처럼, 핍박만 받아온 호남인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표를 주었을 것이다. 이 정부는 그런 의미에서 호남인들에게 특별한 정권이었고 그 결과도 오래 남을 것이다.

단적으로 김대중정부는 실패한 정부다. 이 정부의 치적과 평가에 대해 이견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추락한 지지도,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세우는 것도 갈팡질팡하고 끝내 사분오열하는 민주당의 사정이 이를 증명한다. 실패의 근원은 인사정책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정부와 주요기관의 요직을 특정고 출신이 많이 점령하고, 일파만파로 민간 조직까지 적지 않게 호남인사로 물갈이하는 효과를 가져 왔다. 이것이 밀려난 자들을 화나게 하여 민심이반을 부채질했다. 질 낮은 장관들, 대통령 자식들의 비리, 벤처사업 등에 연루된 각종 부정도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인기와 업적에 연연하여 수많은 사업과 정책을 남발했다. 원칙없는 대북사업은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의약분업의 무리한 강행은 시민의 불편과 재정 피해만 엄청나게 불렸다. 근로자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쓰고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다보니 사회적 기강이 말이 아니게 떨어졌다. 국가 정책은 모두 국민으로 하여금 놀고, 쓰고, 재정을 탕진하는 데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부의 대변자들은 전 정권의 예를 들어 편식과 부정, 질서 부재와 기강 해이가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 인식을 잘못한 것이다. 오늘날 시민의 의식수준은 크게 변했고, 그만큼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올랐다. 더욱이, 이들은 소수집권집단이다. 그 일거수 일투족에 쏠리는 각별한 눈길을 의식하여 보다 조심성있고 공정하게 정사에 임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정부의 불행은 그 태생적 한계를 잊고, 통치집단의 사적(私的) 이해를 초월하지 못한 채 국가 관리에 나선 것이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 모로 오래 갈 것 같다. 실로 어렵게 집권한 이 정부가 호남인보다 오히려 TK·PK를 더 등용하고 진정으로 사심없는 ‘큰 정치’를 했더라면 오는 12월에 정권재창출은 저절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동시에 호남인의 정치적 기회는 창창한 미래에 정정당당하게 활짝 열리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미래의 아버지다. 대권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은 ‘사심(私心)을 버려야 대의(大義)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영봉 중앙대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2-10-26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21026010106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