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反美` 다시 생각할 때

yboy 2002. 12. 7. 11:12
12·19 대선의 날, 한국의 상당수의 기성세대들은 아닌 밤중에 정수리를 맞은 세상 변화에 악연(愕然)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은 얼마나 눈뜬 장님이었던가…. 청년들은 이미 사회의 주류(主流)가 됐는데 변방으로 쫓겨난 자신은 아직 이런 세계에서 산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신세대는 이제 사회 곳곳의 정치적·문화적 가치를 하나하나 개조해 나갈 것이다.

때맞춰 등장한 것이 ‘휘파람공주’라는 영화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숨겨진 딸이 평양예술단의 일원으로 남한에 왔다가 남쪽 총각과 사랑에 빠져 호텔을 탈출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이 북한 공주를 암살, 남한에 뒤집어씌우고 남북정상회담을 무산시킬 것을 공작한다. 이에 남한의 국정원 팀장과 북한 인민무력부 요원이 공조하여 미국과 총싸움을 벌인 끝에 공주를 구출한다.

‘남북한은 동지이고 미국은 남북이 공동으로 분쇄해야 할 적’이라는 메시지가 백주에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웃기기를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 하지만 이것이 오늘의 우리 청장년 세대가 창조하고 영합하는 가치의 현주소다.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 20~30대의 67~75%가 “미국이 싫다”고 응답한 반면 29~31%만이 “북한이 싫다”고 했다.

새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한 이후 ‘7000만 민족의 대통합’이라는 구호가 더불어 등장했다. 이렇게 겁없이 달리는 반미주의와 민족주의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 세상이 나의 손 안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그만큼 책임도 막중해졌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이하 새 시대의 주역들은 세계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오늘날 국수적 민족주의가 무슨 시대적 시사성을 가지는지, 치닫는 반미와 친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선, 오늘의 반미감정이 위험 수위를 넘은 것인지, 감정적 발로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봐야 한다. 지금 남한에는 새파란 미군 병사 수만명이 주둔하고 있다. 양국 관계에 틈을 낼 사건 발생의 소지는 언제나 존재하며, 격화된 감정 아래서는 작은 꼬투리 하나도 대재난의 불씨가 된다. 한·미 두 집단이 화평한 공존을 원한다면 냉정히 대처,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적 촛불 시위가 어린아이까지 대동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에서는 이성적 목소리에 힘이 실릴 여지가 없다.

오늘 75%의 한국이 미국을 싫어하면 내일 75%의 미국이 한국을 싫어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상승적인 혐오 확산이 불러올 궁극적 사태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이미 미국의 유력지들은 미군의 한국 철수 의향을 조심성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미국은 물론 한국 주둔의 전략적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시비 분쟁이 그치지 않고 군장병이 불안한 주둔지 근무를 기피한다면 그 주둔의 이익은 다시 평가될 것이다.

이런 결과가 누구를 더 타격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미국이 한국 반도체 수입에 제동을 건다고 잃는 이익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연간 몇 백억 달러의 생산과 국제 수지의 명줄, 수만명의 일자리가 걸리는 사건이 된다. 미국이 한국에서 자본 철수를 하는 일은 투자 지역의 전환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증권시장은 당장 공황에 빠지게 된다. 격화된 감정 대립은 백여만 재미 교민에게 심각한 경제적·신변적 위협이 되겠지만 수만의 주한 미국 병사는 그저 영외 외출만 절제하면 된다. 만약 미군이 철수한다면 남한에 남아 있을 외국인 투자 기업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한의 정경 상황이 불안해질수록 반사적 이익을 얻는 집단은 북한의 지도층이다. 흔들리던 그들의 입지는 단단해지고 인민 탄압과 대남 공작을 발동시킬 구실이 생긴다. 7000만 대통합과 같은 공동체 의식의 발로를 북한 지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해 보자. 이것이 이미 벼랑 끝에 간 그들의 모험주의를 한층 자극하여 한반도를 정말 전쟁으로 몰아갈 때도 우리는 ‘공동체 운명’을 외칠 수 있을까.

먼 훗날 남북한은 외세를 배제하고 동거할 운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구호와 행위에 분명한 선을 그을 시점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아직 ‘새우’에 불과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그저 외치기보다 현명한 선택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2-12-2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21227010106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