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칼럼

[다산칼럼] 짝퉁 시대정신 `경제민주화`

yboy 2012. 11. 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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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1-08 17:08 / 수정: 2012-11-08 17:08
[다산칼럼]

짝퉁 시대정신 `경제민주화`

분배 위한 사회적 이념에 불과…"일자리까지 해결" 선전해서야
'정치인의 왜곡' 국민 깨달아야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지난 국회의원 총선 때는 “보편적 복지가 시대정신”이라던 정치가들이 많더니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사회적 상식’이고, 그리 되려면 그 시대 ‘가장 필요한 가치를 채워주는 이념’이라야 한다. 과연 이 시대 우리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가치가 무엇이고, 소위 경제민주화란 것이 이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1950년대 시대정신은 ‘통일’이었다고 생각된다. 6·25전쟁 후 통일은 수백만 실향민의 소망이기도 했지만 모든 국민이 통일을 열창했다. 당시 미국원조에 기대어 미래 없이 사는 국민에게 그나마의 희망은 통일해서 남한보다 훨씬 잘사는 북한에 기대어 사는 것이었다.

1960년대 시대정신은 명백하게 경제발전이다. 지독한 가난과 실업에 빠진 국민에게 경제 발전을 통해 잘살 수 있는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생활이 나아지는 기쁨을 처음 맛본 국민에게 신속한 경제발전 이상 무엇이 그리 중요했겠는가. 우리 역사상 박정희만큼 그 시대의 정신을 완벽히 수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0~80년대는 민주화시대였다. 국민은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독재정권이 제 맘대로 권력을 주물러 누구는 성공시키고 누구는 낙오자로 만드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민주주의로 정권을 뽑고 새 법을 만들어야겠다는 바람이 무엇보다 컸다. 이 시대정신은 노태우 이후 민선정권들이 등장해 차곡차곡 수행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침으로써 수많은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에게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가 필요했다. 이 시대정신의 의미는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생계보전과 교육, 의료 등 기초적 복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한 자에게의 복지’가 어느 날 ‘보편적 복지’로, 그다음 경제 민주화로 확장되고 변신하고 있다. 이는 국민이 절실히 요구하기보다 정권 추종자들이 더욱 필요해서 창조한 ‘짝퉁 시대정신’이 아닌지 의심 가는 것이다.

오늘날 국민이 가장 원하는 바는 단연 ‘일자리’일 것이다. 일자리는 이미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과제로 확인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지금 “실업문제가 해결 안 되면 ‘아랍의 봄’ 같은 대폭동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최근 우리 청년들이 벌이는 스펙전쟁, 성형수술, 기타 유난스러운 좋은 직업 갈구와 요 몇 해 사이 갑자기 악화된 일자리 사정을 생각한다면 대통령 될 사람 아니라 누구라도 지금 우리나라에 ‘일자리 창출’ 이상의 시대적 과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여야가 거론하는 경제민주화는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 동반성장, 양극화해소, 일자리 해결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하나같이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을 역행(逆行)한다는 것이다. 반값등록금은 앞으로 더 많은 고학력 실업자를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 모든 복지가 실상 ‘큰 정부’를 만들어, 기업이 이끄는 경제성장, 투자 및 고용능력을 그만큼 소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은 그 재정 소요가 너무나 방대해 장래 성장과 고용기반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우려가 있다.

재벌의 순환출자규제,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 등은 모두 대기업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게 하면 아마 기업은 아무 채용도 안 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공무원 채용을 대폭 증대해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세금 먹는 공무원 하나 더 늘리면 기업 일자리가 아마 1개 이상 줄어들 것이다. 노동인구 4명 중 1명이 공무원이라는 그리스의 올해 10월 실업률은 25.1%, 청년실업률은 54.2%를 기록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국민경제의 분배와 균형을 목적으로 한 사회적 이념일 뿐이다. 대선후보들이 정권획득을 위해, 또는 이것이 일자리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경제민주화를 공약함은 좋다, 그러나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더구나 일자리 해결도 한다고 선전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대통령후 보가 해서는 안 될 말이며 국민도 속아서는 안 될 일이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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