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소수(少數)에 끌려가는 민주주의

/소수(少數)에 끌려가는 민주주의           김영봉(세종대 석좌교수)   3월 22일 새 정부조직법이 제출된지 52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래 52일간 야당이 ‘새 정부 출발’을 인질로 잡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말대로 “온갖 숙원사업과 삼라만상을 다 해결하려” 나왔기 때문이다. 그 바로 5일전 여당은 ‘21일간의 식물(植物) 정부’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정부조직과 하등 관련이 없는’ 4대강 사업과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등을 약속하고 야당과 법안 타결에 합의했다. 이때 여야는 “합의문에 기술된 사항 외엔 새누리당이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른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좌파언론들이 비난하자 민주통합당은 이를 뒤엎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은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준 뒤 정부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향후 매사가 이 모양일 것이니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전에도 그러했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 꼴로 소수 정치패당의 인질이 된 것은 ‘국회선진화법’이란 괴물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법은 세계의 모든 국회가 적용하는 ‘다수결의 원칙’을 버리고, 국회의원의 60%가 동의하는 법안만 상정 가능하게 한다. 소수정당의 허락이 없는 한 국회가 할 일이 없게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5000만 국민이 국회의원 선거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국회선진화 법은 작년 총선 직후 남경필 등 새누리당의 중도적 기회주의적 의원들이 야당과 함께 제의해서 태동했다. “국민은 18대 국회를 대화, 타협, 소통, 민생이 아니라 직권상정, 쇠사슬, 해머, 전기톱, 최루탄, 몸싸움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만든 소위 ‘몸싸움 방지법’이다. 그러나 쇠사슬, 해머, 전기톱, 최루탄을 대체 누가 들고 나왔는가. 지난 18대 국회는 대선에서 진 소수 민주당의 독립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의원 171석의 여당이 제안한 한미 FTA, 미디어법안 등 국가적 중대 사안은 하나도 논의될 수 없었고 수천 개의 법안이 쓰레기처럼 표류했었다. 그런데 이 꼴을 보고서도 자기들만이 ‘도덕적 국회의원’인양 소수야당에게 ‘무조건 타협(굴복)하자’는 법을 만들었으니 향후 국회가 무용지물이 될 것은 어린애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재촉했고 통과되자 황우여 대표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감격했으니 그 지능에 장탄식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은 실상 우리가 매일 민주사회의 규칙으로 배우고 체험하는 것이다. 초등생이 소풍갈 곳을 정할 때나 성인이 대통령을 뽑을 때나 다수결로 선택한다. 그 결과가 불만족해도 내가 양보하고 승복함이 상식이다. 극렬한 노동조합도 파업할지를 다수결로 정하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다수결 판정으로 국법의 기본을 만든다. 그러나 좌파정치집단은 이 단순 무구(無垢)한 민주주의원칙을 항상 무너트리려 해왔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의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 글에서 장황히 설명되는데, 요점은 “다수결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 핵심원리”라는 것이다. “다수결정은 이를 도저히 납득 못하고 양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강행하면 공동체통합에 손상을 입힌다. 따라서 다수결 이전에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남의 다름을 존중하고 수용해서 공동체의 가치로 통합할 줄 아는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이 ‘적극적 관용’이며 나는 이를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라고 말한다.” 이런 노무현의 문제는 바로 자신이 다수의 타인의 의사를 인정 못하는 독선자임을 모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규정하는 ‘관용’만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관용을 훼손한다고 반대하고, 이런 보안법을 반대하는 강정구교수를 비판한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앞날이 험난하다”고 한탄했다. 따라서 김수한 추기경을 북의 체제를 동경 및 전파하는 강정구의 행위를 경계했다고 독선자로 몰았다. 이렇게 국민 간에 타협과 합의가 불가능할 때 다수의 의사를 따르고 소수가 이에 승복하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의(本義)이며 세계 모든 성숙한 민주국가의 관행인데, 그는 이것을 모르는 대통령이었다. 한국의 좌파들이 언제 타협과 설득에 응했나. 그들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민주주의적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집단임을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나 수많은 국회만행 행태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수결규칙이 없다면 양보하고 승복하는 집단은, 나라가 결딴이 나건 말건, 끝까지 불복하고 행패하는 집단을 당할 수가 없다. 이런 정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적은 국민다수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규칙을 파괴하여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해보자는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층은 이제야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해 다수결 기준을 회복시키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대의정치를 도태시키자는 목적을 이룬 야당이 응해줄리 없으며 정작 웰빙 새누리당의원들에게 그런 ‘집단적 의지’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이 법의 존폐에 정권의 운명이 걸린만큼 여당은 반드시 이를 폐지시켜야한다. 이 과정에 어떤 국난(國難)의 사태라도 감수하고 인질범에게는 한 치의 양보라도 하면 안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국회가 이 모양이니 국회가 만든 법이 위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정치가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니 공권력도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50일간이나 버틴 것이 그나마 전의 보수정권에서 못 보던 버팀이었다. 이 정권은 향후 모든 불법 무리한 소수집단을 대처함에 있어서 좌파 이상으로 끝까지 버티는 힘을 보여주어야 국민의 지지와 임기동안 국정운영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