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에 대해 바로 알자
2010년 IMF는 ‘선진국은 GDP 대비 60%, 신흥국은 40%를 넘지 않도록 국가채무를 관리할 필요’를 제시한 바 있다. 과거 한국의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의 장래 부담을 고려해 국가채무증가를 최소화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왔으며, 이에 따라 ’국가채무비율 40%가 묵시적 상한선으로 인정되어왔다.
그러나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채무비율 40%를 지켜야 할 근거가 있느냐?”며 홍남기 부총리를 채근한 후, 2주 만에 부총리는 이를 2022년 45%까지 높이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제출했다.
그런데 최근 GDP 계정 기준연도가 2015년으로 개편되면서 2015년 이후의 GDP가 일제히 6% 커지고, 2018년 국가채무비율도 38.2%에서 35.9%로 떨어지게 됐다. 재정살포에 중독된 현 정부에게는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선물일 것이다. 이 정부가 이를 기화(奇貨)로 삼아 ‘2022년 45%’ 목표를 그대로 밀고 나갈 경우 한국은 향후 4년 안에 ‘국가채무비율 9.1%포인트 상승, 국가채무 40% 증가’의 경이적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간, 이 정부 친여세력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OECD 평균(111%, 2017)보다 극히 낮으므로 오히려 부채 확대를 통한 적극적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왔다. 그러나 한국은 국가 재원 조달구조와 경제 사회적 환경이 세계의 평균과 특히 다른 나라다. 국가정책입안자가 이를 이해 못 하면 이 중요한 문제에 ‘가짜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첫째, 한국은 공기업이 정부를 대신해서 국가사업을 수행하고 거대한 적자도 대신 떠안는 나라다. 2016년 12조 원 영업이익을 내던 한국전력이 탈원전 정책을 떠맡아 올해 1분기 6300억 원 적자를 냈듯, 한국공기업들은 기업의 목적보다 국가의 정책에 동원되어 자신을 희생시키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이들은 정권의 일자리 정책 주택정책 지역균형정책 등에 동원되어 직원을 늘리고, 토지를 보상하고, 본사를 지방에 옮겨 인구 유치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왔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공기업이 거의 민영화돼 공기업부채가 없거나 아주 작다. 따라서 OECD 36개국 중 한국 일본 등 7개국만이 일반 정부 부채(D2)에 공기업부채를 포함해 ‘공공부문 부채(D3)’통계를 산출하고 있다. 이중에도 한국의 공기업부채만 유별나게 커서 D3의 34.0%(2017)를 차지하며, 한국 다음으로 큰 일본은 6.7%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일반 정부 부채(D2)가 국제비교의 지표로서 무의미하다. 반면 외국에서는 D3가 큰 의미가 없다. 즉, 우리는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는 D3를 국제비교용 부채지표로 삼아 외국의 D2에 비교함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한국의 2017 국가채무비율은 42.5%(D2)가 아니라 60.4%(D3)가 되어야 마땅하다.
둘째, 한국은 인구 노령화가 세계 최고로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로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공무원·군인연금 등의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구조다. 이 기금들은 향후 그 조성액이 지급액보다 부족할 경우 정부가 메워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중 공무원·군인연금의 연금충당부채를 D3에 포함해 ‘국가부채’를 추계하고 있다.
작년 국가부채는 1700조 원에 달해 새로 개편된 GDP의 90%에 이르렀다. 이중 940조 원이 공무원·군인연금 부채로 총 국가부채의 무려 56%를 차지했다. 이것 말고도 앞으로 우리 국가부채에는 건강보험·국민연금 충당부채도 추계산입 해야 마땅하다. 이런 사실은 한국의 국가부채가 향후 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111%의 OECD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높은 것이 사실이나 한국이 참고할 ‘숫자’는 아니다. OECD에서 일본(233%) 미국(136%) 이탈리아[132%] 등 부채비율 최상위의 국가들은 기축통화를 쓰는 나라들이다. 기축통화국은 스스로 돈을 찍어 재정·외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미국 일본 유로 국가들을 제외하면 OECD 평균 부채비율은 50~60% 수준으로 낮아진다. 우리의 공공부문 부채(D3) 60.4%와 비슷하거나 이미 낮은 수준인 것이다.
국가채무비율은 국가채무를 GDP로 나눈 수치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무수한 반기업·친노동 제도로 이미 질식 상태라서 분모(分母)인 GDP가 특히 늘어날 가망은 거의 없다. 반면 국가는 노령화·수명 장기화 늪에 빠진 가운데 재정지출 용도만 늘리고 있어 분자(分子)인 국가부채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형국에 정부 국민 모두 ‘낮은 국가부채비율’ 타령하며 적자재정만 즐긴다면 머지않아 국가적 재앙을 맞아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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