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역사의 거울에 비춰본 남북관계 [오피니언 | 2006-09-30]

yboy 2006. 9. 30. 09:57
후한(後漢) 말 기주자사 한복(韓馥)은 동탁과 싸우는 원소(袁紹)를 위해 양곡을 대주었다. 원소는 기름진 기주가 탐났다. 기주 성을 빌려 한복의 골칫거리였던 북해의 공손찬을 치겠다고 꾀자 한복은 성을 열어주었다. 그는 본시 원씨 가문 출신이라 원소를 믿었으며 극력 말리는 신하들에게 “그대들은 왜 어진 원소를 질투하는가” 하고 나무랐다.

원소는 기주 성을 빼앗았고 한복은 도망갔으며 말리던 신하들은 죽임을 당했다. 가도멸괵지계(假途滅?K之計), 곧 괵(?K)을 치겠다며 우(虞)더러 길을 빌려 달래서 우나라를 먹어치운 유명한 진헌공(晋獻公)의 계략에 당한 것이다. 임진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공할 때도 명목은 명나라 칠 길을 가도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을 겨냥한 것이며 그 덕에 남한도 제국주의로부터 보호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주장을 여당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북 정권을 도와주는 모양이다. 국회 통일외교위원장이 “북한의 미사일은 남한을 공격한다 해도 주한 미군기지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는 형편이다. 그들은 북한의 동포애를 철저히 믿고, 미국도 이런 말을 하는 동맹국을 정말 신뢰하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군이 떠난 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들은 누구를 겨냥하겠는가. 북 정권은 민족상잔의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지금도 돈이 되고 체제 유지를 위하는 길이라면 정부가 조직적으로 무기밀매·마약거래·화폐위조·외국인납치를 자행하는 집단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들의 행적이 이러한데 앞으로 저희 핵 미사일 우산에 대한 보호비를 요구하고 노상 공갈하지 않으며, 또 그 이상의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원소를 믿으면 믿었지 어떻게 북 정권을 믿고 한미동맹까지 담보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역사는 많은 진실을 가르친다. 청나라 건륭제는 그의 내시들 성을 모두 조씨와 진씨로 바꾸게 했다. 좌우의 내시를 볼 때마다 조고(趙高)와 진회(秦檜)의 과거 행적을 기억해서 자계(自戒)하기 위함이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유조(遺詔)를 위조해서 제멋대로 다음 황제를 세우고 황제에게 사슴을 말로 믿으라고 강요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간신이다.

진회는 금(金)나라를 위해 조국 남송(南宋)을 망친 중국 역사의 상징적 간신이다. 증선지의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따르면 진회는 휘종, 흠종과 함께 금나라에 끌려갔다가 남송에 돌아와서 고종에게 중용됐다. 그는 “금의 감시인을 죽이고 도망왔다”고 했으나 실은 송의 조정에서 내부공작을 하라는 금의 밀명을 받고 남파됐다고 전한다. 재상이 된 진회는 금과의 화의(和議)에 진력했다.

당시 금은 해마다 송을 침범했으나 송의 걸출한 장수들에게 막혀 여러 번 궁지에 빠지고 오히려 땅을 잃었다. 그때마다 진회는 당황하여 고종에게 아뢰어 장수들을 소환했다. 금의대장 올출(兀朮)을 놓아주며 전설적인 송의 명장 악비(岳飛)는 “10년 쌓은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얻었던 고을들을 한꺼번에 잃었네” 하고 눈물로 노래했다. 올출은 진회에게 편지를 보내어 송의 간성(干城)인 악비를 죽이면 화의를 맺겠다고 약속했다. 진회는 고종을 움직여 악비 부자를 죽이고 송은 금나라에 ‘칭신(稱臣)’하는 화의를 얻었다. 이듬해 금은 화의조건으로 반환한 섬서 하남 지방을 도로 빼앗았고, 덧붙여 당주 유주 상주 진주 화상원 방산원 땅까지 빼앗아갔다. 해마다 송의 영토는 줄어들었고 국력은 쇠잔했으며 급기야 금은 화의약속을 깨고 송에 다시 침공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진회-올출의 관계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맹의 희생 위협 속에 얻으려는 민족 자주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역사를 읽으면 어떤 미래도 가능함을 배우기 때문이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6-09-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60930010323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