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의 독극물 은폐(China’s toxic cover-up)’를 사설로 실었다. 11월13일 페트로차이나 지린 화학공장의 폭발사건은 벤젠독극물을 900만 인구의 하얼빈시와 수많은 쑹화강변 도시를 지나 러시아 국경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왜 중국 정부는 일주일 이상이나 시설관리로 수도공급을 중단한다고 거짓말 했는가?” 사설은 이렇게 따지며 2년 전 중국 당국의 은폐로 사스(SARS)가 만연하게 됐고, 지금도 그들은 조류독감 확산을 정직하게 발표할 의사가 없다고 국제보건 관계자들이 의심함을 강조했다.
연이어 토요일 사설은 황우석 교수의 난자취득 사건을 ‘윤리적 세계화(ethical globalization)’의 주제로 다뤘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있어서는 세계의 생명과학 연구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국제적 행위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상급자의 실험에 쓰일 난자를 그 수하 연구원이 기증함을 금지하고 있으며, 황 교수 연구에서 여성 조교가 난자를 기증한 사실은 분명히 잘못이다. 사설은 작년 이 의문이 제기됐을 때 황 교수가 사실을 은폐하기보다 인정했어야 함을 지적했다.
이들 사건에 대해 세계 언론이 공통적으로 묻는 것은 두 나라의 행동이 국제기준과 투명성에 부합하는가의 문제다. 한국과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그 역할이 커지는 만큼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받는다. 우리가 이 지구촌 사회의 주류(主流)적 역할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사회의 규칙을 솔선해 따르고 스스로 감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
황 교수 사건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도 이를 묻는 것이다. 인간배아세포 연구의 도덕성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성공을 시기한 ‘음모’ 따위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타임’지는 황 교수의 복제기술을 ‘2005년의 가장 놀라운 발명(Time’s Most Amazing Invention of 2005)’으로 선정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사설 또한 ‘황 교수의 이번 수치(羞恥)가 그가 이룬 업적의 과학적 신뢰성을 허무는 것이 아님’을 언급했다.
한국의 문제는 그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세계 모든 연구자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법적 기준을 자의(恣意)로 넘어섰다는 점이다. 황 교수 팀이 복제한 스너피만 하더라도 건강한 개 100여 마리가 동원돼 1095개의 난자를 뽑아내고, 이를 123마리의 대리모에 이식시킨 결과 3마리가 임신, 출산에 성공한 두 마리 가운데 생존한 한 마리를 겨우 얻어낸 것이다. 하물며 인간 대상의 실험에서 난자 취득은 얼마나 어렵고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인가. 이 기준을 우리는 ‘규제의 공백’을 이용해 비윤리적으로 피하고 차별적인 실험환경을 만들었다고 해외언론은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여론의 주 무대는 난자취득사건의 폭로 과정이 잘못된 것인가, 국익이 중요한지 윤리가 중요한지 따위로 난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중요한 ‘국익 사업’의 재출발이 가능하도록 손상된 국제적 신뢰를 어떻게 다시 찾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밖에서 보기에 이런 논쟁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국민적 태도로 의심받기 십상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보편적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 그리고 솔직담백한 태도가 만민(萬民)이 갖춰야 할 덕목이 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일상을 통해 법과 질서보다 양보나 타협이 중요하고, 허황한 가치와 자의적 기준이 필요함을 듣고, 현실에 솔직하기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여론조작과 사실 호도(糊塗)에 능한 정치를 보아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국주의 민족주의를 주입받아 왔다. 이런 정치, 교육 및 여론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첨단기술이나 선진사회는 요원함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5-11-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113001013937191004
연이어 토요일 사설은 황우석 교수의 난자취득 사건을 ‘윤리적 세계화(ethical globalization)’의 주제로 다뤘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있어서는 세계의 생명과학 연구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국제적 행위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상급자의 실험에 쓰일 난자를 그 수하 연구원이 기증함을 금지하고 있으며, 황 교수 연구에서 여성 조교가 난자를 기증한 사실은 분명히 잘못이다. 사설은 작년 이 의문이 제기됐을 때 황 교수가 사실을 은폐하기보다 인정했어야 함을 지적했다.
이들 사건에 대해 세계 언론이 공통적으로 묻는 것은 두 나라의 행동이 국제기준과 투명성에 부합하는가의 문제다. 한국과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그 역할이 커지는 만큼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받는다. 우리가 이 지구촌 사회의 주류(主流)적 역할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사회의 규칙을 솔선해 따르고 스스로 감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
황 교수 사건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도 이를 묻는 것이다. 인간배아세포 연구의 도덕성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성공을 시기한 ‘음모’ 따위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타임’지는 황 교수의 복제기술을 ‘2005년의 가장 놀라운 발명(Time’s Most Amazing Invention of 2005)’으로 선정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사설 또한 ‘황 교수의 이번 수치(羞恥)가 그가 이룬 업적의 과학적 신뢰성을 허무는 것이 아님’을 언급했다.
한국의 문제는 그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세계 모든 연구자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법적 기준을 자의(恣意)로 넘어섰다는 점이다. 황 교수 팀이 복제한 스너피만 하더라도 건강한 개 100여 마리가 동원돼 1095개의 난자를 뽑아내고, 이를 123마리의 대리모에 이식시킨 결과 3마리가 임신, 출산에 성공한 두 마리 가운데 생존한 한 마리를 겨우 얻어낸 것이다. 하물며 인간 대상의 실험에서 난자 취득은 얼마나 어렵고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인가. 이 기준을 우리는 ‘규제의 공백’을 이용해 비윤리적으로 피하고 차별적인 실험환경을 만들었다고 해외언론은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여론의 주 무대는 난자취득사건의 폭로 과정이 잘못된 것인가, 국익이 중요한지 윤리가 중요한지 따위로 난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중요한 ‘국익 사업’의 재출발이 가능하도록 손상된 국제적 신뢰를 어떻게 다시 찾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밖에서 보기에 이런 논쟁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국민적 태도로 의심받기 십상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보편적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 그리고 솔직담백한 태도가 만민(萬民)이 갖춰야 할 덕목이 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일상을 통해 법과 질서보다 양보나 타협이 중요하고, 허황한 가치와 자의적 기준이 필요함을 듣고, 현실에 솔직하기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여론조작과 사실 호도(糊塗)에 능한 정치를 보아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국주의 민족주의를 주입받아 왔다. 이런 정치, 교육 및 여론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첨단기술이나 선진사회는 요원함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5-11-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1130010139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