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칼럼

[시론] 국토 균형발전론의 미망(迷妄)

yboy 2009. 11. 25. 11:47

 

조선일보칼럼 2009/11/25 23:58

[시론] 국토 균형발전론의 미망(迷妄)

  • 김영봉·중앙대 명예교수
  • 입력 : 2009.11.25 23:11
김영봉·중앙대 명예교수

세계는 대도시간 경쟁시대 쇄국적 균형발전론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 갖춘 대도시 집중 전략 만들어야

요사이는 대학졸업반 학생들의 구직전쟁이 절정에 이른 때다. 이들이 이른바 '스펙'을 만드는 모습은 말 그대로 눈물겹다. 토익을 수없이 치르고, 어학연수 가고, B학점을 A로 바꾸려 재수강하고….

우리 대학 진학률은 지금도 85%를 넘었지만 결국 모두가 대학에 가는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좁아터진 나라에 사람밖에 자원이 없는 우리는 모두 이 '치열한 경쟁과 단련'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고급인력은 첨단산업, 금융, 교육, 의료, 법률, 문화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구름처럼 들어설 때 넉넉히 고용될 수 있다. 이를 해결 못하면 한국은 불만, 좌절만 가득 차고 아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국가적 최우선 과제를 무엇에 두어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2006년 이명박 시장이 공언했던 디즈니랜드 서울유치가 상하이로 넘어갔음이 최근에 확인됐다. 오늘날 지구촌 경제체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쇠퇴하고 세계적 도시(global city)가 주역이 되고 있다. 세계적 도시는 상업, 금융, 문화, 미디어 등 선진국형 산업의 둥지가 되고 외국의 자본과 기업이 유입하는 관문이 된다. 따라서 디즈니랜드는 중국이 아니라 상하이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빼앗긴 것이다.

작년 매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중국의 10억 도시인구를 준비하며"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MGI는 중국의 도시인구가 2005년 5억7000만명에서 2025년 9억3000만명으로 증가하고 그 자연추세를 유지하면 인구 100만부터 2000만 이상까지 219개 도시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중국정부에게 중소도시 성장을 억제하고 평균인구 2500만의 15개 '수퍼시티' 조성을 유도하라고 권고했다.

2000만명이 사는 도시는 수십 개 작은 도시보다 도시건축, 평균 수송거리, 교통시스템, 열관리 등에 유리하여 에너지소비를 21%까지 절감시킨다. 도시화로 잃는 경지는 절반으로 줄고 물과 환경오염도 더 잘 관리된다. 무엇보다 대도시는 현대적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하고 그 원천인 지식, 기능, 기술을 배양한다. 중소도시는 자기수준의 생산을 할 뿐 거대도시가 가지는 서비스, 첨단 문화, 높은 시민수준과 노동력의 질(質)을 창출할 수 없다. 외국인 투자는 도시 인프라, 공공서비스, 금융 등 기업환경이 유리한 대도시에만 간다. 종합하면 대도시 집중전략은 2025년 중국의 일인당 GDP를 20% 이상 더 높일 수 있다고 MGI는 주장한다.

중국이 이러한 반면 한국은 쇄국주의 국토 균형발전론의 미망(迷妄)에서 탈출을 못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비효율과 불평등을 낳으므로 오히려 지방에 공기업, 행정부를 이전하고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 인구는 2050년까지 4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이미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이 도시성장이 끝난 나라에서 국토균형 이념이 행복도시 및 16개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8만2000㎢에 3200만이 거주하는 중국의 충칭시보다 면적이 조금 크고 인구밀도는 오히려 20%나 높다. 거기에 국토의 3분의 2가 산지(山地)이므로 수도권도 밀집했지만 한국처럼 농촌과 지방이 북적이는 곳을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이런 나라에 브라질 호주와 같이 땅 넓고 인구 빈약한 나라에서 통하는 국토균형논리가 과연 합당한가?

서울은 작년 10월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2008 세계적 도시지수' 평가에서 9위, 지난달 일본의 모리 기념재단의 '2009 글로벌 시티 능력지수' 평가에서 12위를 차지했다. 둘 다 도쿄 홍콩 싱가포르에는 뒤지지만 상하이 베이징보다는 앞섰다. 한국이 이런 세계적 도시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든든한가. 서울이 한국을 상징하는 국가브랜드며, 그간 한국경제의 심장, 세계적 기업 유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둥지가 되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향후 한국의 미래도 도쿄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와의 경쟁에 달려있을 터이다. 그러나 10년, 20년 뒤에도 우리 수도권이 중국의 도시들보다 우위를 유지할까?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사는 한국인 앞에는 기회와 좌절, 두 가지 앞길이 펼쳐진다. 그 능력을 개방, 자율과 보상으로 키울 때 막강한 에너지를 발휘해서 국가의 생산적 부(富)를 키우고 개인에게 보람찬 직장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대외경쟁을 차단하고 경쟁력 가진 자를 억누르고 폐쇄된 국가자원을 나누어 균형을 이루면 그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는 분노와 갈등으로 전환될 것이다. 오늘날 세종시, 4대강, 전교조민노총에 얽힌 극렬한 적개심과 투쟁이 바로 그 증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