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 서울시가 市民 장바구니도 간섭하나

yboy 2013. 3. 11. 16:01

  기사 게재 일자 : 2013년 03월 11일
<포럼>
서울시가 市民 장바구니도 간섭하나
김영봉/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서울시가 골목상권 보호 명목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팔 수 없거나 축소를 권고할 수 있는 품목 51종을 선정했다. 담배·맥주·소주·막걸리와 배추·무 등 채소 및 계란·두부 등 신선 조리식품, 생선·정육 등 국민의 식탁에 필수적인 식품이 거의 포함됐다.

서울시민(市民)들은 중앙정부에서든 지자체에서든 이런 식품 구입을 모두 규제받을 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 된다면 일상 차 타고 장 보러 마트에 가던 시민들이 모두 이제부터 매일 전통시장을 쏘다니는 일을 되풀이해야 한다. 서울시가 이렇게 시민을 괴롭힐 수 있는지 상상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서울시의 규제 목적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돕자는 것이다. 그러나 마트에서 두부·계란·야채·생선을 살 수 없다면 누가 그 마트에 특별히 가겠는가? 이는 대형마트와 SSM에 서울에서 사업을 접으라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1000만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애용했던 현대적 시장이 일거에 사라질 수 있다. 마트에 입점한 미용원·세탁소, 신선 청과와 식육을 납품하던 농민, 두부회사 등은 날벼락을 맞고 도산, 폐업과 대량해고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골목상권이 너무 중요해 이런 것쯤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대형마트를 다 폐점시키는 법을 만드는 게 보다 빠른 길이다. 그러면 시의 의도대로 서울이 순식간에 작은 마트와 구멍가게로만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우리는 과거 소득 1000달러, 유장했던 장터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이번 서울시 조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수장과 관료들이 보인 거침없는 독선자 의식에 있다. 시민에 의해 뽑힌 ‘지방정부’가 감히 관내 기업의 판매행위를 지령하고 나아가 시민의 소비생활 행태도 조형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이는 일당 독재국의 지도자들도 상상 못할 일이다. 이런 권력은 향후 언제나 더 큰 ‘정의의 사도, 시민후생의 배분자’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 혹시 서울의 과다한 포장마차나 자영식당을 살린다고 호텔과 대형 음식점에 술과 안주 판매를 금지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서울시민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른바 민주주의를 한다는 우리 사회가 보이는 큰 결함이 소비자 권익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번 마트와 SSM 규제에서 보듯 정치인들은 소비자를 유린할 대상으로 보고, 소비자들도 도무지 권익 지킴의 관념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주권(主權)’은 국민의 핵심적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있다. ‘생산은 소비자, 즉 국민을 위한 것이라야 이념적·도덕적으로 정당하다. 만약 소비자 주권이 무시되면 지도자 주권에 집착하는 권위주의 정부에 문을 열어주게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대형 유통업체의 중소도시 진입 금지, 영업시간과 종목 제한 같은 것을 예사로 밀어붙이고 있다. 도대체 중소도시 주민은 대형 백화점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인가. 백화점과 이마트가 없는 중소도시에 누가 이사 가고 싶겠으며, 이런 나라에서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어떻게 얼굴 들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날 부자들은 백화점에 가지만 서민들이 그나마 행복한 쇼핑 기분을 맛보는 곳이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곳이다. 실로 상식과 개념이 상실된 우리 정치와 시민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번 서울시의 판매조정 조치는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서울시가 코스트코에 대해 행정 권한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마구 휘둘러 영업정지시킨 행적이 이번 조치의 효과를 예견케 해준다. 결국 서울시민이 자신의 권리에 눈 뜨지 않는 한 시민의 권리는 언제나 유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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