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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시장은 악(惡)인가

yboy 2014. 3. 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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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시장은 악(惡)인가

4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공정한 사회’ 선풍이 일어나 미국과 유럽에서 10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백여만부나 팔리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책은 이 세상에 ‘정의의 개념과 목적은 매우 다양하다’고 강의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친 서민 정책이 공정한 사회’라고 천명했고, 박원순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를 주는 게 공정한 사회’라고 했다. 그 이래 우리 사회에는 ‘시장은 악(惡),이를 수정하는 나눔·동반·상생이 선(善)’이라는 관념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 이후 ‘자본주의 4.0’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장안을 휩쓸었다. 이는 아나톨 칼레츠키라는 영국의 금융전문 칼럼니스트가 쓴 책의 제목인 ‘Capitalism 4.0, 2010, 7’에 불과했고, 내용도 4.0시대 자본주의는 ‘실용적으로’ 변해 “기업은 정부 정책에 협조하고 정부도 복지 서비스 공급 기능을 후퇴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영국에서 잠깐 주목을 끌었고, 자본주의 4.0은 세계 어디에서도 거론된 바 없다. 그런데 엉뚱하게 4.0은 한국에서 기업 독식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갈아치울 ‘상생자본주의’로 선전되고, MB정부의 동반성장·공생발전 자본주의 선전에 노상 등장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하듯 우리 사회의 담론은 이처럼 모두 다 ‘자본, 시장 및 기업 때리기’로 쏠리는 경향이다. 한국에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행세하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의 안목이 삐뚤어졌다는 뜻이다. 세계가 ‘자유시장-자본주의’ 하에서 두 차례의 핵폭탄 급 금융위기를 맞이하고 양극화와 실업의 파장이 일어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우리처럼 시장의 패악, 기업의 탐욕, 정의, 동반, 상생을 외치는가?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자유시장-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얼마나 부박(浮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불공정하다는 관념은 정부가 시장보다 더 공정하게 자원과 기회를 배분할 수 있다는 국가 만능주의 사상에 근거한다. 그리하려면 적어도 우리 정치가들이 그만큼 현명하고 사심(私心)없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들이 국가·국민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보이는가? 이들은 직업정신, 준법의식, 특권의식 등에서 하나도 보통 국민보다 나은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민들은 이 사람들이 공천과 당선을 위해서는 영혼도 팔 수 있는 파당주의자, 포퓰리스트(populist)로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의 정의는 오늘은 서민편이지만 내일은 누구 편이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자유시장의 전도사였던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는 시장의 위대한 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시장제도는, 만약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면, 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선언될 만하다. 왜냐하면 시장경쟁은 이기적 인간으로 하여금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고 지구로부터 원자재를 거두어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가 원하는 양(量)이 아니라 그의 이웃이 선택하는 양만큼, 그가 매기려는 가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가격에 공급하게 한다.”<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AER 1945.9>. 시장이 이기적 정치가보다 얼마나 우리 공동체 삶에 정의로운 자원배분 기구인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독재자 대신 시민이 이끄는 사회다. 따라서 시민의 자율적 의지와 품성이 국가 사회의 품질을 결정한다. 이 사회의 ‘조화와 성장’의 열쇄는 ‘책임 추적성(accountability)’이 얼마나 존재하고 작동하는가에 달려있다. 귀책성(歸責性)이 있는 사회란 ‘각자에게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책임지우는’ 사회를 말한다. 성실히 일한 자, 정직하게 빚을 갚은 자, 현명하게 투자한 자는 그만큼 보상 받고, 반칙, 태만, 신용불량, 기타 나쁜 행동은 예외 없이 처벌의 고통을 받는다.

귀책성에 있어서 시장은 가장 정확한(exact) 보상 및 처벌 기구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기구가 정상적으로 가동할 경우 100원의 생산성을 제공하는 생산요소에게는 100원을, 110원의 생산을 기여한 자에게는 110원을 보상한다. 100원(110원)을 잘못 투자한 자에게는 100원(110원)만큼 처벌한다. 국가 강제력에 의한 보상-통제시스템은 공동체를 공격한 자에게 수억 원을 보상하기도 하고 1명을 살해하거나 100명을 살해하거나, 1억 원을 사기하거나 100억 원을 사기하거나 그저 비슷한 형벌을 가하는 조잡(粗雜)한 보상기구다. 국가의 복지 배급체제는 무상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수혜를 필요 없다는 사람들에게도 안긴다. 따라서 귀책성의 기준에서 볼 때 시장처럼 정의로운 체제는 없다.

이런 시장경제의 효과는 법치(rule of law)가 존재할 때만 보장된다. 시장은 법이 보장하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가동하여 생산·교환·분배를 이루며, 그 반칙자를 철저히 가려 처벌할수록 제 기능을 크게 발휘한다. 반면, 자비로운 정부 배급 체제는 관용과 배려에 기초한 체제이므로 법치를 약화시키는 속성을 가진다. 따라서 관용과 배려를 위해 법을 무시하는 것이 좌파집단의 오랜 전통이기도하다.

그간 한국에서는 서민 및 생계형의 범죄에 사정을 봐주는 것이 법 집행의 통념으로 형성되어왔다. 국경일마다 수백만 명의 범법·범칙자를 사면 감형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시민의 준법의식이 이완되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법 안 지키는 '법 경시 사회'가 됐다. 이런 온정주의 무원칙의 법치 풍토가 오늘날 기득권층의 범칙, 비리가 규탄되는 '공정 없는 사회'를 도래시킨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정한 경제 사회를 이끌려 한다면 그 시발점을 강력한 법치 회복에서부터 찾는 것이 가장 마땅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장경제와 법질서에 의해 지탱된다. 시장의 경기 규칙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장의 경기자, 곧 국민이 법제도를 만들고 위정자를 뽑아야 하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상호 병립(竝立)하는 관계에 있다. 한편, 시장과 법치는 시민에게 귀책성을 학습시키고, 이를 통해 자율, 책임, 준법 등 민주적 시민의 자질이 형성된다.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보수주의(자유주의??)의 철학은 개인의 행동이 전 공동체의 삶을 결정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귀책성의 기본 요소인 시장과 법치가 정의의 주석(主席)을 차지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시장은 기계적이고 비개인적인 기구라 관용을 베풀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와 실패자를 방치하므로 국가 당국은 관용과 배려로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할에 본말을 뒤바꿔 시장과 법치 이상의 정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가 시험된 곳은 어디에서나 성공했다. 사회주의는 시험된 곳 어디에서나 실패했다. 그래서 얻은 교훈은? 더 많은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948년 자본주의 자유시장 체제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래 우리는 세계 최악의 빈곤-미개국가의 하나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경이하는 자유와 번영의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나 똑같은 민족의 나라인 북한은 공산주의를 택해 아직도 세계 최악의 빈곤-굴종 국가로 남아있다. 이는 우리 한민족이 어느 체제보다 자유시장-자본주의 아래서 가장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국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 국민의 자유 민주주의 의식이 그 물질적 수준에 훨씬 미달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같이 자신의 체제 기반을 스스로 찍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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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 김영봉

- 현 중앙대 명예교수
- 현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통상학과)
-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 University of Colorado(Ph.D. in Economics])
-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

저서
- Education and Development in Korea(Havard University Press, 1980)
- 경제체제론(박영사, 1986)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세경사, 1989)
- 떼한민국(북파크, 1998)
- 신경제체제론(박영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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