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 세종시 수정,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yboy 2010. 6. 16. 17:02

 

문화일보 포럼 2010/06/16 14:19

<포럼>
세종시 수정,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기사 게재 일자 : 2010-06-16 13:50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6·2 지방선거가 끝나자 세종시 수정안이 축구공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국정연설에서 “국회가 표결 처리를 해주면 정부는 그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며 수정안 선택 여부를 국회에 맡겼다. 그러자 이젠 야당이 “수정안 철회 책임을 왜 국회에 떠넘기느냐”며 정부가 스스로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정치·행정 기능을 양분하는 세종시 처리 문제는 이 시대 가장 중대한 국가대사라고 할 수 있다. 언필칭 국회의원이라면 이 의안이 행여 잘못 처리될까 밤 새워 따지고 온몸으로 고뇌해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찬부(贊否)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당 일부 의원들은 정파 지도자의 뜻에 따라 그간 국회 토론조차 거부했고, 야당 의원들은 이제 수정안 부결 책임에서도 도망가려 하니 국회의원이기를 포기한 처사다. 그나마 이들이 의안 처리에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은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은 지난 3월 행정부 분할의 폐해가 명백한 원안을 도저히 추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 정부에 의해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의 수정 법안은 마땅히 국회의 논의를 거쳐 의결처리돼야 한다. 그러나 그간 여당이 분열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6·2 지방선거의 여파로 그 미래 운명을 모르는 채 국회의 결정에 넘겨지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정부가 수정안 추진의 동력을 상실해 사실상 ‘출구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가사업인 세종시 건설안이 왜 권한 없는 몇 명 지자체장이 바뀌었다고 폐기돼야 하는가.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수정안 지지율은 52% 대 39%로 원안을 압도했다. 세종시 수정을 포기해서 안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대통령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수정안이지만 이 때문에 국론 분열과 정치적 균열이 심화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국회 결정을 촉구한다”고 천명했다. 정운찬 총리도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과 저의 소신이다. 국회가 민의를 수용해 현명하게 결정해 달라”는 국회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여당의 지방선거 부진을 이유로 그가 자임한 역사적 사명을 포기함은 언어도단이다. 여당의 친박계와 야당도 최소한 수정안의 내용과 의미를 성의껏 살펴보려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

세종시 원안은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미 좀 보려고” 추진했다고 스스로 천명한 포퓰리즘의 결정체다. 원안대로 9부2처2청의 중앙 부서가 세종시에 이전하면 문명국가 어디에서도 없는 기괴한 정치·행정 실험을 해야 한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국토가 크든 작든 인구가 많든 적든 이렇게 행정부 분할을 하는 선진국은 없다. 독일은 분단국가였기 때문에 행정 부처가 베를린과 본으로 나뉘었지만 통일 후 그 비용을 혹독히 치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 두 도시 행정부를 통합하는 문제가 큰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도 남북이 통일되면 우선 수도 통합 문제부터 다뤄야 할 것이다.

수정안은 이 위험한 정부 이전을 백지화하고 그 대신 과학·기업·교육 도시 기능을 조성해 세종시를 국가 및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자족 도시로 만들자는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들에게는 어떤 제안이 장래 국리민복에 기여하는지 아주 판단이 쉬운 문제다. 여야 정치권도 정략과 사욕의 안경을 벗으면 이 문제의 해답을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세종시 원안은 지금 수정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언젠가 지금의 몇 배 갈등과 비용을 들여 수정해야 할 사안이다. 이 수정에 관련된 정치지도자, 국회의원, 지자체장, 언론, 사회단체는 그들의 언행에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