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태종 이세민은 관롱(關?I)집단이라는 호족(胡族)의 군벌 출신이다. 관롱집단은 중국 북서부 관중(關中) 농서(?I西)지방의 선비(鮮卑)계 호족과 호족화된 한인집단을 이른다. 북조(北朝) 수·당(隋唐)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국의 비주류 정치·군사 세력이다.
태종 자신이 오랑캐 혈통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관롱집단에 대한 동료 의식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관중인과 산동(山東)인의 문제가 나왔을 때 그는 관중인을 편들려 했다. 이에 신하 장행성(張行成)이 간했다.
“천자는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습니다. 마땅히 동서를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천자는 사람들에게 편협하게 보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태종은 크게 깨닫고 장행성에게 극진한 상을 주었다고 한다. 문벌 없는 태종이 위·진(魏晉) 이래의 명문 벌족 출신 산동인을 꺼리고 같은 근본의 관중인에게 인정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은 천하를 경영하는 황제이다. 곧바로 그는 “천자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해야 한다. 관직은 천하인민을 위한 것이므로 오직 현재(賢才)를 선발해 담당시킬 것”이라고 공표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치세로 인정받는 정관(貞觀)의 치(治)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당 태종의 재상과 장군은 강남, 산동, 관롱의 전지역에서 등용됐고 명문, 서인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일생 의지하여 귀를 기울인 대신 위징(魏徵)은 바로 황위 쟁탈 때 반대파에서 그를 죽여야 한다던 전략가였다. 역사는 언제나 사리(事理)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노무현정부는 그동안 비주류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수없이 표명했다. 대통령의 인사보좌관은 ‘흙 속의 진주’를 찾는다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백화점에 널린 고급 진주는 부정하니 가짜 진주라도 꼭 흙 속에서 찾아 목에 걸겠다는 것이다. 탄핵받은 행자부장관에 대해서는 “학벌 없는 사회를 일구어낸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라 앞으로 더 성공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장관의 임용 기준은 행정 능력보다 ‘보통사람의 꿈’을 상징하는 데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의 최고 운영자가 가장 경계할 일은 자기 도취적 정의감에 빠지는 일일 것이다. 대통령은 그 순간 그가 감싸는 집단의 대표가 되고 만다. 국정의 공감대는 상실되고 사회는 양분화된다. 정부의 편견은 이상한 논리를 횡행시켜 사회를 오랫동안 골병들게 한다.
때 아니게 오늘날 학벌 타파와 서열 파괴가 공론화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일류 학교를 나온 사람은 연줄로 묶이니 모든 학교를 평준화시키고, 그동안에는 줄을 세워 새 사람의 참여 기회를 막았으니 인사고과 성적 석차매기기 같은 선발 제도를 모두 파괴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지 말고 열심히 일하게 하지도 말고 그저 사회 정의만 생각하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그런 정부는 왜 세계 일류 상품을 발굴하고 일등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외치는가. 세상에 일등을 죄악시하며 어떻게 국가 발전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학벌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사람들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하게 마련이고, 현 정권은 한술 더 뜬다.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의 학력·경력을 토대로 평가받고 능력에 따라 승진한다. 전과자나 학력 탈락자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극소수의 예외적 상황이다.
오늘날 한국을 이만큼이라도 발전시킨 사람들은 그런 질서 아래에서 인정받고 성취한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의 기업·학교·정부가 모두 학벌 연고로 사람을 뽑았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 필리핀보다 못한 후진국이 됐을 것이다.
이 사회에 소수 집단의 참여 기회는 마땅히 신장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목적 있는 비약으로 학벌 서열 타도 논리를 펴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오늘 같은 살벌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일류 인간, 일류 대학, 일류 기업, 일류 정부를 하루도 쉬지 않고 키워도 모자란다. 이것은 흙 속의 진주, 보통사람의 꿈들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세기 들어 중국은 연간 8%의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데 비해 싱가포르와 대만은 마이너스 성장을 맴도는 처지이다.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의 거대한 경제적 흡인력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결정적 시기 몇 년을 실족해 보내면 우리는 2만달러는커녕 아마 8000달러 유지도 힘들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계는 지금 ‘40년만의 최악의 경제’라며 투자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시기에 파괴적인 학력 서열 타파 운동이 가당하다 할 것인가.
/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3-09-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093001010614191004
태종 자신이 오랑캐 혈통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관롱집단에 대한 동료 의식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관중인과 산동(山東)인의 문제가 나왔을 때 그는 관중인을 편들려 했다. 이에 신하 장행성(張行成)이 간했다.
“천자는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습니다. 마땅히 동서를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천자는 사람들에게 편협하게 보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태종은 크게 깨닫고 장행성에게 극진한 상을 주었다고 한다. 문벌 없는 태종이 위·진(魏晉) 이래의 명문 벌족 출신 산동인을 꺼리고 같은 근본의 관중인에게 인정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은 천하를 경영하는 황제이다. 곧바로 그는 “천자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해야 한다. 관직은 천하인민을 위한 것이므로 오직 현재(賢才)를 선발해 담당시킬 것”이라고 공표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치세로 인정받는 정관(貞觀)의 치(治)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당 태종의 재상과 장군은 강남, 산동, 관롱의 전지역에서 등용됐고 명문, 서인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일생 의지하여 귀를 기울인 대신 위징(魏徵)은 바로 황위 쟁탈 때 반대파에서 그를 죽여야 한다던 전략가였다. 역사는 언제나 사리(事理)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노무현정부는 그동안 비주류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수없이 표명했다. 대통령의 인사보좌관은 ‘흙 속의 진주’를 찾는다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백화점에 널린 고급 진주는 부정하니 가짜 진주라도 꼭 흙 속에서 찾아 목에 걸겠다는 것이다. 탄핵받은 행자부장관에 대해서는 “학벌 없는 사회를 일구어낸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라 앞으로 더 성공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장관의 임용 기준은 행정 능력보다 ‘보통사람의 꿈’을 상징하는 데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의 최고 운영자가 가장 경계할 일은 자기 도취적 정의감에 빠지는 일일 것이다. 대통령은 그 순간 그가 감싸는 집단의 대표가 되고 만다. 국정의 공감대는 상실되고 사회는 양분화된다. 정부의 편견은 이상한 논리를 횡행시켜 사회를 오랫동안 골병들게 한다.
때 아니게 오늘날 학벌 타파와 서열 파괴가 공론화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일류 학교를 나온 사람은 연줄로 묶이니 모든 학교를 평준화시키고, 그동안에는 줄을 세워 새 사람의 참여 기회를 막았으니 인사고과 성적 석차매기기 같은 선발 제도를 모두 파괴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지 말고 열심히 일하게 하지도 말고 그저 사회 정의만 생각하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그런 정부는 왜 세계 일류 상품을 발굴하고 일등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외치는가. 세상에 일등을 죄악시하며 어떻게 국가 발전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학벌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사람들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하게 마련이고, 현 정권은 한술 더 뜬다.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의 학력·경력을 토대로 평가받고 능력에 따라 승진한다. 전과자나 학력 탈락자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극소수의 예외적 상황이다.
오늘날 한국을 이만큼이라도 발전시킨 사람들은 그런 질서 아래에서 인정받고 성취한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의 기업·학교·정부가 모두 학벌 연고로 사람을 뽑았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 필리핀보다 못한 후진국이 됐을 것이다.
이 사회에 소수 집단의 참여 기회는 마땅히 신장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목적 있는 비약으로 학벌 서열 타도 논리를 펴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오늘 같은 살벌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일류 인간, 일류 대학, 일류 기업, 일류 정부를 하루도 쉬지 않고 키워도 모자란다. 이것은 흙 속의 진주, 보통사람의 꿈들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세기 들어 중국은 연간 8%의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데 비해 싱가포르와 대만은 마이너스 성장을 맴도는 처지이다.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의 거대한 경제적 흡인력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결정적 시기 몇 년을 실족해 보내면 우리는 2만달러는커녕 아마 8000달러 유지도 힘들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계는 지금 ‘40년만의 최악의 경제’라며 투자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시기에 파괴적인 학력 서열 타파 운동이 가당하다 할 것인가.
/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3-09-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093001010614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