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바람잡이가 춤추는 선거 [오피니언 | 2004-04-02]

yboy 2004. 4. 2. 10:37
이번 4·15총선은 실로 바람잡이 선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 모든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십중팔구 우세이다. “거리로 나가 혁명하라”고 소리치는 어느 선동가의 말대로 “단군 이래 이토록 국론이 통일된 유례가 없는” 선거판이다.

바람잡이들은 거짓과 과장으로 사람의 혼을 뺀다. 모든 국민을 흥분시킨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진실’은 이러하다. 차떼기도둑 국회의원 일당이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 국민 여론을 거스르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도 측근 비리, 국정파탄 책임에 선거법을 어겨 탄핵받을 일을 했다.

양자에게 다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탄핵 의결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 정도로 사과할 것까지는 없고 대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발언했다. 분노한 국회의원들이 떼지어 탄핵소추안 의결에 동참했다. 대통령이 유발하지 않았으면 탄핵은 없었다.

방송 등 여권 미디어는 이를 기막히게 각색했다. 모든 소란은 탄핵을 불지핀 대통령 때문인데, 그가 오히려 이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탄핵소추는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국회에 설치한 장치인데 이를 작동시킨 것이 헌정 질서의 중단 사태가 됐다.

대통령 탄핵은 민주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치 절차인데 이것을 오히려 반민주, 치욕스러운 정치후진국 행태로 규탄했다. 이제 소추 사안의 판단은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차분히 기다려야할 때이나 대통령 궐위로 국가대란이 나고 국민이 직접 심판에 나섬이 의무인 듯이 선전했다.

참으로, 남자를 여자로 만든 조작이다. 정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의 책임, 탄핵당한 대통령의 창피한 얼굴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현 정권 기간중 어떤 법치가 이뤄졌는지, 투자·고용·사회적 갈등이 어떤 형상이었는지는 이제 논의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 결과 30%를 밑돌던 대통령 지지도가 오히려 70%대로 뛰고 한국의 명문 대학생들은 90% 이상이 탄핵소추를 반대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 말고 어디에서 이런 정치 희화(戱畵)를 볼 것인가.

이런 선거판 이후 무엇이 나타날 것인가. 새로 태어나는 거대 여당이 앞으로 어떤 정치 극(劇)에 재미를 붙일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다만, 국회에서도 다수당이 됐으니 이제 대의정치로 돌아오고, 핍박받는 자의 핑계도 없어졌으니 법치 질서가 다시 서기를 기대한다.

야당은 이번에 축소될 대로 축소된 왜소 정당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태반이라 할 보수집단이 걸 기대는 이들밖에 없다. 과거 불법·비리·분열·갈등이 난무할 때 야당이 굳건하게 국기(國基)를 지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늘날 어떻게 세상이 변해도 이들 지지 세력이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난 1년, 거대 야당이 그 지지자의 기대를 저버린 사례는 수도 없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표는 막판에 KBS 시청료 분리납부 문제를 흐지부지시켰다. 공영방송에 신물 내던 수많은 국민의 기대를 KBS 사장과 폭탄주를 마시며 이유도 알리지 않고 저버렸다. 그가 무슨 권리로 다시 오지 못할 국민의 기회를 팔았는가. 지금 야당이 여론의 핍박을 받는 것은 바로 당 대표가 초래한 업보 때문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상정됐을 때, 야당 의원은 끝도 없이 단상에 올라가 추태를 벌였다. 전국의 TV 앞에서 이들은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서는 안면 몰수하고 언제나 국익을 희생할 사람임을 과시했다. 그 가운데 몇 명은 이번 선거에서 생존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국민의 마음은 그 때 이미 한나라당을 다 떠났을 것이다.

차떼기 도둑이라고 비난받는 중에도 야당은 불법 비리 의원의 구제를 위해 방탄국회를 열고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나 여성전용지역구제에도 동료의원과 당략을 위해 지지해 주었다. 거대 정당의 의원이 된 이들은 국민을 우습게 알았다. 이들이 최후로 기적같이 결집해 결의한 것이 대통령탄핵인데 그나마 여론이 반전되자 이를 철회하자는 기막힌 주장이 나왔다.

이런 야당에는 이번 총선에서 싹쓸이되는 것이 차라리 하늘이 주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그들이 자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대청소를 이번 선거가 대신해 주게 됐다. 야당이 썩은 서까래와 기둥을 모두 헐고 작지만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 같은 기만적 선거판도 껍데기를 잃고 소박함과 성실함을 얻는 전기(轉機)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4-04-0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40201010614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