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년전 파리∼마드리드간 철도 건설이 논의될 때 보르도(Bordeaux) 출신의 국회의원이 이곳에서 철로 연결을 끊고 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객과 물자를 갈아 태울 사정이 되면 보르도의 뱃사공·하역자·호텔업자가 모두 이익을 얻고, 따라서 국가 경제에도 이득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당대의 독설가 바스티아(F. Bastiat)가 당장 이 탐욕스러운 제안을 매도했다.
“보르도가 철로에 틈을 내어 이득 얻을 권리가 있다면, 그 이득이 또한 국민의 이익과 일치한다면, 앙굴렘(Angouleme), 푸아티에(Poitiers), 투르(Tours), 오를레앙(Orleans)은 물론 그 중간 지점 모두가 국민적 이익이란 이름을 걸고 철로에 틈을 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틈이 많을수록 하역 운송 보관수입은 증가할 것 아닌가. 이렇게 하면 우리는 종국에 ‘틈새’로만 구성된 철도, 곧 선로 없는 철도(negative railway)를 가지게 될 것이다.”(Economic sophisms 1845)
정부가 오송·김천·울산에 경부고속철도 중간역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것은 총선을 의식한 게 결코 아니라 그 수혜지역을 확대하고 지역 균형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고속철도의 목적이 언제 수혜 지역 확대가 됐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역사(驛舍)로만 연결된 철도’를 목표로 현재 11개 역사를 무한히 늘리는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민의 이익이란 이름 아래 국가사업을 주무르는 일은 현 정부의 장기(長技)이다. 고속철도만 해도 금정산, 천성산 터널 구간 공사를 대통령이 지시해 7개월간 중단했다. 또, 대통령이 울산역 추가를 제안하자 이 참에 중간역이 3개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 서울∼부산간 직행과 중간역 통과 열차를 같이 운행할 것이므로 운행 시간 지연은 걱정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간역 증설을 생각 못한 과거 계획자는 바보인가.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사람이 당장 떠나는 ‘완행’을 타야지 2시간에 주파하는 12시 출발 직행을 기다릴 수 없다. 열차 선로는 하나인데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런 변설로 속이려 하는지 모르겠다.
11년전, 5조8000억원의 사업비로 2000년대 초에 개통한다던 고속철도는 벌써 18조4000억원 예산에 2010년 완공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새 정부의 손질 때문에 또 공기 지연, 공사비 추가가 불가피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물리적 손실이 아니다.
언제나 바꿔도 좋게 된 정부사업 원칙이다. 평등을 좋아하는 정부는 교통 효율을 제고하자던 고속철도의 원래 목적을 별 고민 없이 지역 균형개발로 바꿨다. 이런 정부가 총선을 아무 일 없이 지나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인가.
신행정수도 건설 또한 대통령은 “결코 선거용 공약이 아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므로 반대하는 국민을 모두 설득해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의 이런 확신이 어떻게 형성됐든 필자는 납득 못할 일이다. 국토 균형발전의 낙원에서 혼자 제외될 강원도민은 혹 설득될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대선 기간중 4조∼6조원으로 선전하던 행정수도 건설비는 아니나 다를까, 요즘 45조원을 운위한다. 도대체 우리같이 좁은 나라에서 왜 이런 엄청난 비용이 드는 행정수도가 필요한가. 브라질이나 호주 같이 넓은 나라라면 모른다.
일본, 영국, 이탈리아, 기타 어떤 인구 밀집된 나라가 유서 깊은 수도를 버리고 새 수도를 만드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적의 지상포화 사거리 안에 700만명이 사는 수도가 있을 수 없다”며 천도를 계획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당위성도 언급한 바가 없다.
지금 수백만 인구가 한두 시간의 서울 통근도 마다 않고 신도시에 산다. 수많은 공직자가 서울과 대전에 두 곳 살림을 차리고 주말마다 왕복한다.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새 수도는 서울과 한 시간 통근거리도 안 된다. 두 도시간에 교통량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주거·상업 시설이 줄을 이어 오히려 지역 불균형이 심해질 가능성은 없는가. 새 수도 주민이 얻을 땅값 상승을 위해 소외된 국민은 얼마나 세금을 물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수많은 토론과 조사를 통해 검토해야 한다. 그 결과를 국민에게 솔직히 알리고 전국민의 의사를 묻는 것이 가장 바르고 현명한 길일 것이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공약했다고 해서 그가 전단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이다.
또한, 정권의 목적을 위해 국가사업을 손대며 국민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는 일은 이제 그쳐야 한다. 그 경제적 비용을 무는 국민이 속고 무시당할 이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3-11-2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112001010614191004
당대의 독설가 바스티아(F. Bastiat)가 당장 이 탐욕스러운 제안을 매도했다.
“보르도가 철로에 틈을 내어 이득 얻을 권리가 있다면, 그 이득이 또한 국민의 이익과 일치한다면, 앙굴렘(Angouleme), 푸아티에(Poitiers), 투르(Tours), 오를레앙(Orleans)은 물론 그 중간 지점 모두가 국민적 이익이란 이름을 걸고 철로에 틈을 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틈이 많을수록 하역 운송 보관수입은 증가할 것 아닌가. 이렇게 하면 우리는 종국에 ‘틈새’로만 구성된 철도, 곧 선로 없는 철도(negative railway)를 가지게 될 것이다.”(Economic sophisms 1845)
정부가 오송·김천·울산에 경부고속철도 중간역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것은 총선을 의식한 게 결코 아니라 그 수혜지역을 확대하고 지역 균형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고속철도의 목적이 언제 수혜 지역 확대가 됐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역사(驛舍)로만 연결된 철도’를 목표로 현재 11개 역사를 무한히 늘리는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민의 이익이란 이름 아래 국가사업을 주무르는 일은 현 정부의 장기(長技)이다. 고속철도만 해도 금정산, 천성산 터널 구간 공사를 대통령이 지시해 7개월간 중단했다. 또, 대통령이 울산역 추가를 제안하자 이 참에 중간역이 3개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 서울∼부산간 직행과 중간역 통과 열차를 같이 운행할 것이므로 운행 시간 지연은 걱정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간역 증설을 생각 못한 과거 계획자는 바보인가.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사람이 당장 떠나는 ‘완행’을 타야지 2시간에 주파하는 12시 출발 직행을 기다릴 수 없다. 열차 선로는 하나인데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런 변설로 속이려 하는지 모르겠다.
11년전, 5조8000억원의 사업비로 2000년대 초에 개통한다던 고속철도는 벌써 18조4000억원 예산에 2010년 완공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새 정부의 손질 때문에 또 공기 지연, 공사비 추가가 불가피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물리적 손실이 아니다.
언제나 바꿔도 좋게 된 정부사업 원칙이다. 평등을 좋아하는 정부는 교통 효율을 제고하자던 고속철도의 원래 목적을 별 고민 없이 지역 균형개발로 바꿨다. 이런 정부가 총선을 아무 일 없이 지나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인가.
신행정수도 건설 또한 대통령은 “결코 선거용 공약이 아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므로 반대하는 국민을 모두 설득해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의 이런 확신이 어떻게 형성됐든 필자는 납득 못할 일이다. 국토 균형발전의 낙원에서 혼자 제외될 강원도민은 혹 설득될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대선 기간중 4조∼6조원으로 선전하던 행정수도 건설비는 아니나 다를까, 요즘 45조원을 운위한다. 도대체 우리같이 좁은 나라에서 왜 이런 엄청난 비용이 드는 행정수도가 필요한가. 브라질이나 호주 같이 넓은 나라라면 모른다.
일본, 영국, 이탈리아, 기타 어떤 인구 밀집된 나라가 유서 깊은 수도를 버리고 새 수도를 만드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적의 지상포화 사거리 안에 700만명이 사는 수도가 있을 수 없다”며 천도를 계획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당위성도 언급한 바가 없다.
지금 수백만 인구가 한두 시간의 서울 통근도 마다 않고 신도시에 산다. 수많은 공직자가 서울과 대전에 두 곳 살림을 차리고 주말마다 왕복한다.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새 수도는 서울과 한 시간 통근거리도 안 된다. 두 도시간에 교통량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주거·상업 시설이 줄을 이어 오히려 지역 불균형이 심해질 가능성은 없는가. 새 수도 주민이 얻을 땅값 상승을 위해 소외된 국민은 얼마나 세금을 물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수많은 토론과 조사를 통해 검토해야 한다. 그 결과를 국민에게 솔직히 알리고 전국민의 의사를 묻는 것이 가장 바르고 현명한 길일 것이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공약했다고 해서 그가 전단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이다.
또한, 정권의 목적을 위해 국가사업을 손대며 국민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는 일은 이제 그쳐야 한다. 그 경제적 비용을 무는 국민이 속고 무시당할 이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3-11-2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112001010614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