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 유례없는 ‘공정한 사회’ 선풍
이 일어나 미국, 유럽에서 10만 부도 팔리지 않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 이상 팔렸다. 센델 교
수의 책은 이 세상에 정의의 개념과 목적이 다양함을 강의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이 공정사
회”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했고, 그 이후 우리사회에는 “시
장은 악(惡),이를 수정하는 나눔 동반 상생은 선(善)”이라는
관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최근에 영국의 한 금융문제 전문 칼럼니스트(Anatole
Kaletsky)가 쓴 책의 이름 『자본주의 4.0<Capitalism 4.0, 2010
7>』이 한국에 ‘따뜻한 자본주의’로 등장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영국에서 잠깐 주목을 끌었
을 뿐이고, 그 후 ‘자본주의 4.0’은 세계 어디에서도 거론되
지 않았다. 내용은 4.0시대 자본주의는 “실용적으로” 변해
선진국 정부들은 복지 서비스 공급기능을 후퇴시키고 기
업들은 정부정책에 협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는 ‘기업독식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갈아치울 상생의 자
본주의로 선전되고, 8·15 대통령 경축사에도 출연해 ‘공
생발전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창조하기까지 했다.
위의 사례처럼 오늘날 우리사회 담론은 모두다 “자본,
시장 및 기업 때리기”로 귀결되고 경박하게 쏠린다. 케인
즈의 큰 정부 자본주의 이후 등장한 ‘자유시장 자본주의’
하에서 세계에 두 차례의 핵폭탄 급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양극화와 실업의 파장이 일어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러나 세계 어느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도 오늘 우리처럼
시장의 패악, 기업의 탐욕, 정의, 동반, 상생을 외치지 않는
다. 이는 우리사회전반에 자유시장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얼마나 부박(浮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이처럼 불공정하고 상생을 저해한다는 관
념은 정부가 시장보다 더 공정하게 자원과 기회를 배분
할 수 있다는 국가만능주의 사상에 근거한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 정부, 곧, 정치가들이 사회의 자원과 기회를 시장
보다 더 정의롭게 배분하려면 최소한 시장의 보통사람보
다 사심(私心) 없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들은 국가-국민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정치
적 생명이나 파당적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비추이는
가? 이들은 직업정신, 준법의식, 특권의식 등에서 하나도
보통국민보다 나은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은 공천과
당선을 위해서는 영혼도 팔 수 있는 파당주의자, 포퓰리스
트(populist)라는 평가를 흔히 받고 있다. 이들의 정의는 오늘
서민편이지만 내일 누구 편이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자유시장의 투사였던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는
시장의 위대한 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시장 제도는, 만약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면, 인간 역사
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선언될 만하다. 왜냐하면 시
장경쟁은 이기적 인간으로 하여금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
다보고 지구로부터 원자재를 거두어 그가 원하는 것이 아
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가 원하는 양(量)이 아니라
그의 이웃이 선택하는 양만큼, 그가 매기려는 가격이 아
니라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가격에 공급하게 한다.”<“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AER 1945, 9> 시장이 이기적
정치가보다 얼마나 우리 공동체 삶에 정의로운 자원배분
기구인가.
오늘날 시장의 결과를 부정하고 국가의 복지공급 역할
증대를 강조하는 것은 이에 의해 국민 개개인의 복지와 경
제적 후생이 증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
한가.
1998년 미국 상원의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정부의 규
모 및 기능과 경제성장>이란 보고서를 통해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 23개국의 경험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이 국
가들의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년 평균 27%에서
1996년 48%로 증가했으며 이는 거의 복지비용증대 때문이
다. 그런데 이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평균 경제성장
률은 6.6%, 30∼40%일 경우 3.8%, 60%이상 1.6% 등 정부
가 커질수록 성장률은 일관적으로 낮아졌다. 만약 미국이
계속 1960년대 수준으로 정부지출 비율을 유지했더라면
1996년 실질 GDP는 20% 정도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이 보
고서는 추산한다.
JEC의 결론은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이 10% 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1% 포인트 감소한다는 것이
다. 1996년 OECD국가의 정부지출은 GDP의 48%로 높아졌
다. 그러나 국민의 신체와 재산보호, 방위, 교육, 사회간접
자본 등 정부의 핵심기능에는 단지 GDP의 15% 미만의 지
출만이 유지되어, 비대해진 공공부문의 낮은 생산성이 민
간부문에서의 생산성 성장 이득을 말소시키는 역할을 했
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와 일자리 예산으로 ‘큰 정부’가 만
들어지고, 과대한 정부지출이 필연적으로 민간기업의 투
자, 고용의 역량을 파괴시키며, 따라서 오히려 성장률 하
락에 의한 빈곤 및 실업증대를 초래함을 경험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한국은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3.0 신자유주의 자본’시대
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됐다. 그런 나라에서 시
장과 기업이 가져오는 이익은 분명히 그 폐해보다 더 크
고, 국민이 이에 더 잘 적응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균형 있고 신중하게 경쟁시장 자유기업 체
제의 공(攻)과 과(過)를 살펴야한다. 우리는 이 체제를 걷어
차기에 앞서 수많은 질문을 해보아야한다.
“지금 대졸청년들은 대량으로 실업자가 되는데 왜 중소
기업들은 심각한 구인난에 빠지는가, 이는 대기업의 탐욕
때문인가. 왜 한국의 대기업은 과거 보호받던 때 허약하다
가 소위 ‘3.0 신 자유주의자본주의’ 하에서 세계적 기업으
로 자랐는가. 왜 과거 수십년간 거대한 국가지원을 받아오
는 중소기업이나 농업은 아직도 이렇게 취약한가.”
시장과 기업이 이렇게 혐오되는 땅에서 결국 시장과 기
업은 시들고 죽어버리지 않겠는가. 시장이 쇠퇴하면 시장
이 편애하던 정직 성실 능력 책임 등의 덕목도 이 사회에
서 쇠퇴할 것이다. 기업이 만들던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
고 정치가들이 나누어주던 거대한 국가재정도 사라질 것
이다. 그리된다면 따뜻한 공생자본주의, 공정한 사회를 만
들어줄 돈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시장은 악惡인가?
시장이 혐오되는 땅에서는 자유도 소멸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경제학]
“시장경쟁은
이기적 인간으로 하여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