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기업가精神이 숨쉴 수 있게 해야 한다

yboy 2015. 1. 9. 18:12
기사 게재 일자 : 2015년 01월 09일
<포럼>
기업가精神이 숨쉴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새해 벽두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8년까지 80조7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상쾌한 약속을 선사했다. 연 20조 원이 넘는 거대한 투자이며, 전체의 76%를 국내에 투자하고, 39%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차의 이번 투자는 무엇보다 자사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려는 것이다.

현대차의 대규모 투자는 지금 침체 일변도인 한국경제의 투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는 우선 수많은 부품 및 계열기업에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로 파급될 것이 기대된다. 마침 삼성전자 역시 올해 사상 최대 투자를 약속했다. 이런 한국의 양대 기업의 결단은 현금을 보유하더라도 세계적 경기 불확실성 속에 투자를 주저하는 많은 기업에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한국의 제조업은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분위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엔화 하락으로 경쟁력이 급상승한 일본과,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중국 사이에 끼어 시장은 축소되고 기업실적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악명 높은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높은 임금, 낮은 생산성이 범람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산업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필요한 것이 기업가 정신(精神)이다. 기업이 이를 회피해 위험 극소화, 해외 탈출, 정부 의존 같은 소극책만 도모하면 마침내 경쟁 대열에서 탈락해 도태하는 건 시간 문제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이런 선택을 하면 한국 경제는 공멸할 것이다. 현대차의 과감한 결단은 기로에서 망설이는 이 시대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에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귀감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업가 정신의 본질이 ‘위험부담(risk taking)’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자동차의 80조 원 투자도 계산이 어긋나거나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으면 기업의 명을 끊을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세계 각국은 무력에 의한 영토 쟁탈이 아니라, 시장을 걸고 ‘기업 전쟁’을 하고 있다. 병사 대신 기업이 싸울 뿐 승부에 졌을 때 처참함은 마찬가지다. 전쟁에서 패한 기업은 추락하거나 파산하고 수십만 종업원과 협력업자가 운명을 같이한다.

그 반면 승리할 경우, 기업은 거대한 시장과 이윤을 수확하고 국가사회는 그 이익을 나눈다. 기업투자와 혁신이 일어나면 국민의 소득, 일자리, 국고를 채울 세금이 창출돼서 국민의 안전·교육·행복 등이 다 증진된다.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무수히 자라는 나라가 부강한 대국이 된다. 이는 국가·국민·기업이 한 운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국가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국가와 국민은 기업에 봉사함이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지난 70년 기적의 견인차는 우리 기업이었고, 원동력은 기업가 정신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은 그런 평가에 부응하는 노력을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대한민국은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나라가 되는 형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기업을 탐욕·불공정의 대상으로 엮으려는 세력과 당략의 목적으로 경제 살리기나 투자 촉진을 위한 법을 무력화하려는 정치 집단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땅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숨을 쉴 수 없다. 누구보다 국민이 기업과 시장에 대해 올바른 식견을 가져야 하고, 그리해서 정치가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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