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국회선진화법 是正 더 늦춰선 안 된다

yboy 2016. 1. 25. 14:51
기사 게재 일자 : 2016년 01월 25일
<포럼>
국회선진화법 是正 더 늦춰선 안 된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

새누리당이 모처럼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나서 편법까지 동원했지만, 그마저 국회의장이 거부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재적 과반이상 요구’를 추가하는 개정안을 국회법 제87조 규정을 이용해 변칙 상정하고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할 방침이었다. ‘재적 60% 의결’ 조건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국회의 현실에서 ‘50% 직권상정’의 길이라도 열자는 의도다.

그러나 정의화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선진화법의 최대 독소조항인 ‘60% 통과조건’은 빼고 의장 직권상정 요건만 완화한 내용이어서 부실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은 엄격해야 하고 국회 룰 변경은 여야 합의가 필수이기 때문에 상정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60% 의결 조건을 ‘과반’으로 완화하고, 법제사법위의 월권 제한까지 포함한 ‘중재안’을 자신이 마련해 ‘여야 합의처리’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선진화법을 폐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장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왜 이제까지 수수방관해 ‘식물국회’를 방치했는지 책임을 물을 만하다.

과연 정 의장 ‘중재안’은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지금 야당이 합의가 불가능한 정당임은 국회의장을 포함해 국민 모두가 아는 일이다. 국회의장이 되지 않을 일을 중재해보겠다는 것은 ‘현 상태’를 방치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19대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국회로 최악의 평가를 받을 것”이란 말은 바로 정 의장이 한 것이다. 그 원죄는 선진화법에 있지만, 국회의장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선진화법에 의장 직권상정 통로를 마련한 것은, 마치 정전(停電)시 비상등처럼 선진화법의 왜곡으로 국가가 움직이지 못할 때 긴급가동을 예비한 장치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호소하는 경제활성화법 등의 직권상정을 ‘천재지변, 국가위급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번도 상정해준 적이 없다.

국회선진화법의 제정 정신에는 야당도 최소한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발휘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야당은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법들을 무기한 표류시키고 흥정하고 알맹이를 다 빼내야 통과시켰다. 따라서 정부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일도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상실, 대표 기업들의 추락, 취업 절벽 등의 위험은 과거 외환위기·금융위기의 수준을 넘어섰다. 국민의 좌절과 국회에 대한 원망도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무능 국회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무능 국회를 바로잡는 것은 의장의 책임 아닌가. 정 의장은 자신의 중재안을 제19대 국회 만료(5월 29일)를 눈앞에 둔 지금에서야 제안해 19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야당이 이를 합의해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곧 국회의원 선거전이 시작되면 정치권은 이에 함몰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결국 새누리당 수정안이나 국회의장 중재안이나 모두 폐기될 수밖에 없다.

제19대 국회의 남은 임기 동안 정 의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은 2월 8일 설날 이전에 여당이 요구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 수정안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여당이 갈구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안, 여타 쟁점 법안들을 남은 19대 임기 중에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이 역대 최악 국회의 의장이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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