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국민은 경제
성장보다는 복지국가와 사회격차 해소를 더 중요하게 꼽고 있다’는 내용의 ‘2016 총선 시대정신 조사 보고서’를 지난 8일 발표했다. 여의도연구원은 ‘국민이 다 함께 행복한 선진 복지국가’를 총선의 전략 기반으로 제안했고, 당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격차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은 구호뿐인 ‘껍데기 공약’일 것이다. 제19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69만 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는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기업들에 개혁과 회생의 길을 열어줄 ‘기업 활력 제고법’, 고용 증대에 필수적인 노동개혁 5법 등을 일체 무산시킨 채 지난 9일 끝났다. 10일 개회된 임시국회에서도 일자리 창출 법안보다 오히려 야당이 발의한 대기업 법인세율 인상, 경제 민주화 등 반(反)기업·반시장 법과 무상 포퓰리즘 법안들이나 무더기로 통과되지 않을까 경제 각계는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복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선거가 우리의 운명이 돼 가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마구 ‘돈 뿌리기’를 공약하는 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저소득가정 미취업자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9~24세 청년 모두에게 ‘청년배당금’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대전시 대덕구는 ‘장수축하금’, 고양시는 ‘효(孝)수당’을 준다는 등 끝이 없다.
이렇게 국고를 자기 주머니로 여겨 국민에게 인심 쓰는 행태는 가장 저열(低劣)한 포퓰리즘 정치 수법이며, 유권자 매수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자립 의지를 죽이고 장래 거지로 키우는 미끼가 된다. 포퓰리즘은 ‘망국(亡國)의 병’이다. 이 병에 한번 걸리면 국민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로마, 아르헨티나와 같이 역사적으로 이 병이 창궐했던
나라들을 떠올려 보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얼마나 빨리 나라를 거덜 낼 수 있는지는 그리스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다.
1981년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 재정적자 3%, 실업률 2~3%의 유럽의 경제 우등국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범그리스 사회주의운동당이 집권하면서부터 운명은 반전(反轉)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기도 했던 그가 총리 취임 후 처음 한 말은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라”였다. 이후 노동자 임금과 최저임금이 끝없이 인상되고 무상
교육, 무상의료가 전 계층으로 확대됐다. 국민의 퇴직금은 최고연봉의 95%에 이르러 근로 의욕과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기업은 임금 상승, 해고 제한, 각종 조세 부담의 증가로
투자·고용을 회피해 사라져 갔고, 지금은 그리스 GDP의 90% 이상을 관광과 해운업에 의존하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임금은 40%, 연금은 45%, GDP는 25%가 삭감됐다. 올 1월 그리스의 실업률은 25.7%. 청년실업률은 50.1%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가기관은 섬을 판다고 하고, 고급 직업여성들은 매춘에 뛰어들고, 시민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나라가 이렇게 거덜 나도 국민은 사회당 정권에 열광해 2009년에는 안드레아스의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를 집권시켰다. 포퓰리즘이란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포퓰리즘은 정치가의 역할과 권력을 키우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혹(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심판하지 못하는 국민은 그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