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보수 여당이기를 포기한 ‘반값 등록금’

yboy 2011. 5. 25. 17:17

문화일보 포럼 2011/05/25 15:11

기사 게재 일자 : 2011년 05월 25일
<포럼>
보수 여당이기를 포기한 ‘반값 등록금’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한나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서자마자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과거 야당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를 ‘대표적 표(票)퓰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여당이 이번에는 기선을 제압해 먼저 반값 등록금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 당의 새 원내대표는 ‘무상 대학교육’의 가능성도 언급해 향후 ‘공짜 대학’에까지 무상 시리즈 논란을 확대시킬 물꼬를 터 놓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따라서 국가가 모든 국민의 대학교육비를 지원하는 문제는 국내 대학교육의 목적과 현실, 그 경제·사회적 파장, 이에 따른 국민 부담 및 태도까지 두루 살펴 적절성을 판단해야 하는 과제다. 과연 어떤 국가 책임이 적정한 것인지는 각 정당의 존재 목적과 이념적 정체성에 따라 해답돼야 할 부분인데, 이번에 한나라당은 그간 좌파 정당이 외쳐 마지않던 무상 배급주의가 가장 정당한 논리임을 만천하에 인증해준 것이다.

지금 서민층 중산층 할 것 없이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나 이 국민의 비명 속에서 한국의 대학 수요는 끝없는 확대를 계속했다. 1990년 33.2%이던 고졸자 대학진학률은 2009년 83.9%, 세계에 유례가 없는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만약 반값 등록금이나 공짜 대학이 도입된다면 이 대학교육 포식 현상은 더욱 부채질될 것이 자명하다.

한국은 오늘날 전 국민이 모두 대학에 가는 나라가 됐다. 이 증세의 폐단은 우선 대학과 대학생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84% 대학진학률은 전국의 도시·농촌, 실업계·인문계 어떤 고교 졸업자든 아무나 다 대학에 진학함을 의미한다. 이들 모두가 대학 수업능력을 가질 수는 도저히 없다. 그러나 그간 정부가 입학정원을 늘려 주고 대학이 무수히 늘어나 이들을 모두 유치하고 거의 다 학위를 주어 내보냈다. 이들 덕분에 그저 이름뿐인 대학이 생존할 수 있게 되고, 학부모는 경쟁력 없는 대학의 수업료 마련에 등골이 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학교육의 과잉 현상은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엄청난 자원 낭비를 초래하게 한다. 모든 대졸자는 그의 교육 투자에 상응하는 높은 보수, 좋은 품질의 일자리를 원하지만 이들 모두가 그에 상응하는 자질이나 태도를 갖추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런 일터는 어느 국가 사회에서나 제한된다. 결국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고학력 청년실업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이런 무절제한 대학교육 확산에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 불만족을 연쇄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대학 재학생은 졸업해도 기약(旣約)이 없는 장래와 이런 교육에 들어가는 과다한 비용에 분노할 것이다. 대졸자와 학부모는 고등교육을 제공한 국가와 정권이 그들에게 적절한 일터를 마련해 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결국 대학교육이 남발될수록 대학교육과 연계되는 사회적 서비스와 기회, 재정 부담, 고통, 좌절 등 모든 불만 요인이 확대 생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제안은 향후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개연성밖에 제공할 게 없다. 대학교육은 누구에게나 나눠주어서 좋을 사치재가 아니며 오직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만이 그 비용 이상의 수익을 자신과 국가 사회에 보상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가 막대한 국민 혈세를 들여 무조건 무상교육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국가 백년대계인 고등교육 및 인적자원 양성 기능을 파괴하고 국민을 공짜만 좋아하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으로 키울 위험성이 크다. 한나라당의 이런 포퓰리즘 선택은 결국 대학과 국민을 망치고 당의 선거마저 망칠 가능성이 너무 큰 것이다.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