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수도이전, 票로 심판하자 [오피니언 | 2005-02-22]

yboy 2005. 2. 22. 11:01
진(晉)문공이 원(原)을 공격할 때 장졸들에게 열흘분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열흘이면 함락된다고 장담하고 만약 열흘 내로 함락 못 시키면(불연이면) 그때는 철수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열흘이 돼도 함락되지 않았으므로 군대를 거두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성 안에서 빠져나와 “원은 식량도 힘도 다해 앞으로 사흘이면 낙성(落城)할 것”이라 고했다.

좌우 군신이 계속 진공할 것을 권했으나 문공은 “나는 병사들과 열흘 기한을 약속했다. 원을 잃을지언정 신의를 잃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철병하고 말았다. 원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저토록 신의를 지키는 군주라면 그를 따라야 한다” 하여 성을 내주고 항복했다. 이웃 위(衛)나라 사람도 이 말을 듣고 역시 감복해 스스로 문공에게 성을 내주었다.

지난주 여야는 ‘행정복합도시’ 건설 관련 특별법과 건설청을 설치하자는 데 대략적인 합의를 보았다.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이미 결정한 사업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청와대 등이 안 가니 법을 위반한 것이 없다며 이름을 바꾸어서 추진하고 있다. “성(城)을 점령하되 성주의 가택은 손대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 성을 점령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먼 안목에서 ‘법과 국민에의 신의’를 지켜 국민 전체의 마음을 사기보다 특정 지역 민심을 매수하고 나머지 국민의 안목을 가려 보려는 사도(邪道)를 택한 것이다.

야당은 본시 원칙과 명분 없이 ‘충청도 땅뺏기’ 싸움에 이삭이라도 줍겠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 충청도에서 몇 %를 구걸하고 나머지 국민의 신뢰는 버리기를 택했다. 또다시 수권정당을 기다리는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에 진문공은 없다. 그러나 국민 또한 원나라, 위나라만 못하기에 이런 정치가 창궐하는 것 아닌가? 항상 통찰하고 침묵하지 않는 국민이 있었다면 이렇게 언어도단의 선전이 난무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는 당초에 발을 못 붙였을 것이다. 새 행정도시는 곧 국회 동의의 절차를 끝내고 2007년 대선 시기에 맞추어 착공할 예정이라 한다. 이제 기댈 것이라곤, 국민이 지금부터라도 사업의 진의를 현명히 파악해서 투표의 위력으로 힘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수도이전이 국토 균형 개발의 핵심이라는 선전부터 살펴보자. 남한의 면적(9만9000㎢)은 중국의 충칭(重慶)직할시(8만2000㎢)보다 조금 큰 정도다. 도무지 확 터진 평지라곤 없고 70%가 산악인 세계 최고의 인구조밀 국가다. 조금 과장한다면 서울 경기가 도심이고 남은 반도가 부도심이나 교외(郊外), 녹지에 해당한다. 만약 반도 한 귀퉁이에 개발 안 된 땅이라도 있으면 오히려 환경과 후세를 위해 남겨 둬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기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10조원을 들여 도시를 짓고 수도권 1500만 인구 중 30만명을 유치한다면 이것이 국토 균형 개발인가 부동산 개발인가?

서울~충청 간은 국토 중 그나마 가장 붐비는 구간이다. 만약 국토 균형 때문에 행정부처를 꼭 옮겨야 하겠다면 광주건 대구건 남쪽의 먼 도시에 새 청사를 마련함이 보다 합리적·경제적이다. 새 도시를 꼭 만들어야 하겠다면 레저와 해양시대를 맞아 구상중인 남해안 개발지역 같은 곳을 물색함이 경제적 파급효과와 지역개발 유도효과를 동시에 도모하는 길일 것이다. 장기-연기로 행정부를 옮길 이유는 영·호남 대결구도상 충청표가 대통령을 결정한다는 이른바 ‘충청 결정론’ 이상 찾아볼 도리가 없다.

정부 이전은 많은 거품을 만들 것이다. 수많은 공무원과 민원인이 수시로 왕래해야 하고 따라서 관·민의 물자·주거비·교통비 등이 이중으로 지출된다. 이 거품과 불편을 사는 데 공무원이 가장 큰 비용을 치르고, 모든 국민은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이다.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 영·호남 모든 사람이 경제와 문화 중심지 따로, 관청 따로 가야 하는 불편을 제 돈 주고 사야 할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거품으로 시작하는 사업은 언제든 터지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5-02-2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22201013114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