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의원이 27명의 변호인단을 선임하는데, 여당 국회의원 10명이 포함됐다는 소식이다. 국회 법사위원회의 변호사 출신 여당 의원 7명이 모두 여기에 가담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지자체 후보의 공천과 관련해 배임 수재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다. 부당하게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권력자 한 명의 사사로운 변호를 위해 국회 여당 법사위원 전부가 나선 것이다. 이 의원들은 국민의 세비를 받고 거대한 국가 예산을 쓰며 나라의 법제의정을 전관하는 국민 대표들이다. 이들이 이름만 빌려주는 것인지, 무료 봉사하는지는 알 바 아니다. 그 행위 자체가 국민이 맡긴 바를 배임하고 권세를 써서 국가의 사법 기능을 훼방할 수도 있는 행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 공직자들의 이중성과 국민 무시는 전염병처럼 만연하고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새 경제부총리로 무엇보다 깨끗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얼마나 윤리기준을 들먹이고 부산을 떨었는가? 그런데 뒤돌아서자마자 동료 의원 구제를 위해 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힘의 시위에 나섰다. 현 정부는 과밀한 수도를 통박(痛駁)하며 행정부 이전 법안 처리를 강행했고, 같은 입으로 수도권의 소개(疏開)를 막겠다며 인구와 산업을 유치할 포괄적 개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전했다.
또, 현 정권처럼 인권유린 행위를 증오하고 이의 근절에 결의를 보이는 집단은 과거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처럼, 명백한 북한 동포의 참상을 일부러 안 보고 그 개선 노력에 재를 뿌리는 집단도 없었다. 국민의 이목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행위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이런 이중놀음을 할 수가 없다. 원천적인 도덕결핍증과 국민 비하 증세가 되풀이 재미를 보며 죄의식을 털어내고 불감증을 더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싫든 좋든 국가경영자이고, 가장 눈에 띄는 사회적 역할모델(role model)이다. 이들의 언행을 좇아 표리부동과 파렴치성이 사회 구석구석에 전염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지난주 녹색연합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우리 해군기지에 정박한 것을 “한반도 비핵화선언 2조에 위배된다”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그보다 만 배는 더할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 선언에 대해 그들이 한번이라도 언급한 적이 있는가?
천민(pariah)들은 돈을 버는 목적을 위해선 아무것이나 다 한다. 19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자본가국가들이 수전(收錢)의 목적을 위해 노동자 수탈, 해적질, 노예 매매, 정복과 전쟁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었다. 제국주의가 극성이던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지식인들은 대부분 이런 천민적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예언했다. 과연 2차대전 후 동유럽권은 소련이 점령하고, 식민지 해방국들은 제3세계를 형성하고, 서유럽 제국은 사회당과 노동당이 모두 집권했다.
이 위기를 구한 것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의 발전이었다. 시민들은 절제 없고 타락한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았고, 선출된 정부는 공정한 제도를 정착시켰으며, 경제사회 주체들은 그러한 법치 질서를 따랐기 때문이다. 서양의 선진사회가 수단과 방법의 절제와 합리적 선택을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계의 주도 체제로 다시 부상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참여정치가 만개했음을 자랑하는 오늘날 우리 정치가 천민을 닮아 아무것이나 다 하는 모양새는 실로 볼 수가 없다. 시민의식을 성숙시켜 이를 견제해야 할 일부 사회운동가, 시민단체 등이 오히려 천민화하는 모습은 우리 민주주의의 장래를 보여주는 거울인 것 같아 더욱 우려스럽다. 국민들은 곧 이런 민주주의정치를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바로 이들 천민인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5-03-2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329010131141910041
김 의원은 지자체 후보의 공천과 관련해 배임 수재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다. 부당하게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권력자 한 명의 사사로운 변호를 위해 국회 여당 법사위원 전부가 나선 것이다. 이 의원들은 국민의 세비를 받고 거대한 국가 예산을 쓰며 나라의 법제의정을 전관하는 국민 대표들이다. 이들이 이름만 빌려주는 것인지, 무료 봉사하는지는 알 바 아니다. 그 행위 자체가 국민이 맡긴 바를 배임하고 권세를 써서 국가의 사법 기능을 훼방할 수도 있는 행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 공직자들의 이중성과 국민 무시는 전염병처럼 만연하고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새 경제부총리로 무엇보다 깨끗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얼마나 윤리기준을 들먹이고 부산을 떨었는가? 그런데 뒤돌아서자마자 동료 의원 구제를 위해 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힘의 시위에 나섰다. 현 정부는 과밀한 수도를 통박(痛駁)하며 행정부 이전 법안 처리를 강행했고, 같은 입으로 수도권의 소개(疏開)를 막겠다며 인구와 산업을 유치할 포괄적 개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전했다.
또, 현 정권처럼 인권유린 행위를 증오하고 이의 근절에 결의를 보이는 집단은 과거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처럼, 명백한 북한 동포의 참상을 일부러 안 보고 그 개선 노력에 재를 뿌리는 집단도 없었다. 국민의 이목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행위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이런 이중놀음을 할 수가 없다. 원천적인 도덕결핍증과 국민 비하 증세가 되풀이 재미를 보며 죄의식을 털어내고 불감증을 더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싫든 좋든 국가경영자이고, 가장 눈에 띄는 사회적 역할모델(role model)이다. 이들의 언행을 좇아 표리부동과 파렴치성이 사회 구석구석에 전염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지난주 녹색연합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우리 해군기지에 정박한 것을 “한반도 비핵화선언 2조에 위배된다”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그보다 만 배는 더할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 선언에 대해 그들이 한번이라도 언급한 적이 있는가?
천민(pariah)들은 돈을 버는 목적을 위해선 아무것이나 다 한다. 19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자본가국가들이 수전(收錢)의 목적을 위해 노동자 수탈, 해적질, 노예 매매, 정복과 전쟁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었다. 제국주의가 극성이던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지식인들은 대부분 이런 천민적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예언했다. 과연 2차대전 후 동유럽권은 소련이 점령하고, 식민지 해방국들은 제3세계를 형성하고, 서유럽 제국은 사회당과 노동당이 모두 집권했다.
이 위기를 구한 것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의 발전이었다. 시민들은 절제 없고 타락한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았고, 선출된 정부는 공정한 제도를 정착시켰으며, 경제사회 주체들은 그러한 법치 질서를 따랐기 때문이다. 서양의 선진사회가 수단과 방법의 절제와 합리적 선택을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계의 주도 체제로 다시 부상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참여정치가 만개했음을 자랑하는 오늘날 우리 정치가 천민을 닮아 아무것이나 다 하는 모양새는 실로 볼 수가 없다. 시민의식을 성숙시켜 이를 견제해야 할 일부 사회운동가, 시민단체 등이 오히려 천민화하는 모습은 우리 민주주의의 장래를 보여주는 거울인 것 같아 더욱 우려스럽다. 국민들은 곧 이런 민주주의정치를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바로 이들 천민인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기사 게재 일자 2005-03-2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32901013114191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