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미 FTA 왜 필요한가? 2007년 여름호 ![]() [김영봉 | 중앙대학교 교수] |
김영봉 延世大學校 商經大學 經濟學科 卒業(1966.2) Ph.D.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Co. U.S.A.(1971.5) 韓國開發硏究院 首席硏究員(1971~1981) 中央大學校 政經大學 經濟學科 敎授(1980~현재) < 著 書 > Education and Development in Korea (공저, Havard University Press, 1980) 經濟體制論 (박영사, 1987) 資本主義와 社會主義 (공저, 세경사, 1989) 대한민국 (북파크, 1999) 1. 序論: KORUS FTA의 의미 작년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처음 제안됐을 때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9회 말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에 비유하는 글(한국경제신문 2006년 6월 4일자)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의 3년 경제성적표는 기록적인 세계 경제의 번영 속에 우리만 성장과 투자 부진의 늪에 빠진 실패의 기록이다. 야구로 말하자면 국가대항전에 나가 1회, 4회, 7회 모두 주자를 놓고 삼진당한 타자의 꼴이다. 그러나 9회 말 절체절명의 마지막 공격에서 3점 역전홈런을 친다면 사람들은 그의 과거 기록을 모두 잊고 우레와 같이 환호할 것이다. 그는 국가의 쇠잔하는 성장잠재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를 살렸으므로 이제 영웅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내용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의 주도하에 이른바 'KORUS FTA'가 타결되었다. 시민들 또한 큰 점수를 주어서 협정이 타결된 이틀 뒤의 갤럽 조사에서는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개월 전의 12.3%에서 무려 29.8%로 뛰었다. 적어도 한·미 FTA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은 이미 큰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치든지 다음 임기의 대통령이 이루든지 비준 절차까지 끝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역사의 偉業으로 기록될 수 없다. 한·미 FTA에는 '국가의 福'이라는 관점과 '災殃'이라는 관점이 모두 존재한다. 안보, 외교, 전략상의 의미가 크게 강조되기도 하고 '주권 상실'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오직 현재 타결된 FTA의 경제적 의미에만 관심을 가지며, 이의 긍정적 효과를 크게 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의 한국 경제는 '기회를 잃어 가는 경제'로 볼 수 있다. 21세기 지구촌의 화두는 글로벌 시장, 경쟁과 성장이지만 우리는 균형개발, 평준화와 분배에 몰두하여 왔다. 2001~2005년간 세계의 1인당 GDP 성장률은 연 3.5%, 인류가 역사 기록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다는 성장률을 기록해 왔으나 이 기간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성장률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늙어 가고 고질적으로 악화되는 우리 경제의 체질이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늙고 은퇴해서 부양할 인구는 늘어나, 앞으로 성장을 계속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잠시도 쉬지 않고 생산기반을 확충 및 선진화시켜야 할 때이지만 오히려 기업의 투자회피가 고질화되고 있으며, 반면에 치솟는 국민복지 부담을 감당할 국가 재정기반은 계속 파괴되는 중이다. 이것이 고물가-고임금 구조에 의한 기업 수익률의 악화, 새 성장산업의 부재, 기업의 해외 탈출, 소비의 해외 탈출 같은 病勢로 하나하나 노출되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손상시키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한국은 현상 유지는커녕 어떤 퇴보적 국가로 전락할지 모를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성장동력이 꽉 막힌 상황에서 제안된 것이 바로 한·미 FTA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과의 FTA는 우리 수출산업에 활로를 열어 주고 국내외 기업에 투자 기회를 넓힐 수 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한국의 고물가-고비용 구조를 개선시켜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특히 우리의 낙후되고 비효율적인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 효과보다 중요한 것이 미국, 곧 글로벌 스탠더드의 본고장(home)과 통합된 거래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비즈니스 제도, 관행과 思考를 선진국 수준으로 혁신할 기회를 얻자는 것이다. 현재 타결된 한·미 FTA의 수준이 이 기대를 충족시킴에는 크게 미흡하지만 최소한 9회 말 주자는 내보낸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경제 선진화의 출발점은 마련했고 향후 이것을 어떻게 得點으로 바꿀지는 우리 경제참가자가 하기 나름이다. KORUS FTA가 비준동의 절차를 거쳐 예정대로 발효된다면 이것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오늘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유무역지대가 된다. 무역의 이익은 항상 작은 나라에 더 크게 마련이므로 이 시장통합을 활용하는 효과도 물론 한국에 훨씬 크게 일어난다. 미국은 NAFTA에 이어 그들에게도 두 번째로 큰 자유무역지대가 되며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세력이 날로 확장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첫 번째 FTA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하였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의 경제적 교두보로서 한국의 경제적 利點과 전략적 가치, 그 밖에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한국의 친중, 친북 노선에 제동을 걸기 위한 포석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선택일 것이다. 그 어느 것이 됐든 KORUS FTA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EU 등 세계 무역을 선도하는 5개 지역 사이에 최초로 이루어진 FTA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경제올림픽 주최국으로 결정된 것같이 갑자기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향후 동아시아 경제통합에서 한국의 흡인력이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향후 비준 절차가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로서는 이 시점에서 애초 예정한 계획표대로 연내 비준동의까지 단숨에 강행함이 그동안의 積功을 허물지 않는 길이 될 수 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말대로 FTA 비준동의는 지금 騎虎之勢를 탔을 때 몰아붙임이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올해를 넘기면 내년에는 어떤 불확실한 사태가 대내외적으로 발생하고 이것이 어떻게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다. 올해 말의 대선과 내년의 국회의원 총선을 지나며 정치가들이 민족주의, 반미 감정, 농촌을 비롯한 집단이기주의에 어떻게 영합해서 현재 우호적인 FTA 여론을 뒤바꿀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성사된다 해도 차기 정부와 차기 국회가 성공시키는 모양새가 되어 노무현 정부의 공은 반감될 것이다. 오늘날 노 대통령이 처한 입지가 이런 돌파능력을 허용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만이 가지는 무기도 있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반미적으로 알려진 대통령이기에 그가 이룬 FTA 타결의 업적이 더욱 빛나 보인다. 같은 이유로 그가 앞으로 국민에게 펼칠 설득 노력은 그 누가 하는 것보다 정당하고 국익에 근거한다는 도덕적 권위를 과시할 수 있다. 향후 비준 절차 과정에서는 국내의 반대세력에 대처함이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과연 민주당이 지배하는 미국 의회가 이를 순순히 동의해 줄 것인가. 지난달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다시 고개를 드는 미국 의회의 무역보호주의를 언급하며 "한·미 FTA가 미국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1989년 멕시코가 미국과 FTA를 협상할 당시 살리나스 대통령(Dr. Carlos Salinas)은 다음해까지 비준 절차를 포함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FTA 발효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과 농산물이 홍수처럼 유입될 것을 우려한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해 주지 않아 그는 미국에 클린턴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하였다. 따라서 KORUS FTA가 정말로 국가의 福이라 판단한다면 우리는 국내 문제 해결에 亂脈을 보이며 대외적으로 오만을 부릴 여유가 없다. ‘기회는 스스로 돕는 자에게만 온다’는 자세로 국내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겸허하게 때를 기다려야, 이 희귀한 기회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많은 정치집단과 이익집단이 치열하게 반대투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자급이 불가능한 나라다. 개방을 통해 경제를 키워 왔고, 북한과 같은 폐쇄 의존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개방해서 도전해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할 운명이다. 향후 비준동의를 준비함에 있어서 피해 산업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피해집단에 적절히 보상할 길을 마련해 줌은 당연하지만 FTA 자체를 파괴하고 악용하려는 집단에 휘둘림을 당해 기회를 잃을 수는 없다. 이렇게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국민에게는 비록 어떤 좋은 FTA가 타결되더라도 소용없는 것이다. 2. 현 FTA의 한계와 쟁점 2-1. 반쪽짜리 개방; 폐쇄된 서비스 시장 FTA의 직접적 이익은 협정국가 간 무역과 투자장벽을 낮추어 고용과 성장 증대를 꾀하자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의 이런 역할은 하락 일로를 걸어왔다. 그 대표적 指標로서 한국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대미 수출 비중은 1986년 40%에서 2006년에는 13%대로 낮아졌고, 미국 수입에서 한국 제품이 점유하는 비율은 1980년대의 4%대에서 현재 2%대로 줄어들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번의 FTA로 국내총생산(GDP)은 0.42~1.99%(29억~135억 달러) 늘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최대 404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따라서 지난 FTA 협상 과정에서 양국 간의 협상 쟁점은 자동차, 섬유, 쇠고기, 농산물 등 주요 상품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데 집중되었다. 미국 시장에서 관세율이 낮아지고 무역장벽이 제거되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고전하는 우리의 수출기업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시장접근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수출채산성이 급격히 하락하는 우리 기업들에 활력소를 주어 투자와 고용을 늘릴 계기를 마련하고, 적어도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의욕을 키우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제조업 수출증대의 이익은 제한된 것으로, 너무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미 FTA의 이익은 이보다 우리 국내 시장 개방으로 발생할 물가안정과 이의 파급 효과, 소비자 후생 증대, 그리고 선진국 산업의 국내 진입으로 인한 경쟁 유도와 학습 효과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효과는 오늘날 폐쇄적으로 뒤떨어진 우리의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이익을 유도할 수 있다. 실상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선진국형 경제에서는 서비스 산업이 그 경제의 수준을 반영한다. 서비스 산업은 가장 많이 고용하고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작년도 우리 서비스 산업은 GDP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지만, 작년 서비스 산업의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는 2821만원으로 제조업 부문 5036만원의 56%에 불과했다. 즉, 이 산업이 비효율 부문으로 남아 있음으로 인해 한국 경제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정말 향후 제2의 성장기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낙후된 서비스 산업을 선진국처럼 지식집약형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도 미국처럼 해외로 뻗는 자본과 금융 산업을 가져야 한다. 세계 인력을 유치하는 교육센터 및 환자를 끌어오는 의료센터가 되고 기타 유통, 관광, 법률, 전문 서비스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보해야 한다. 우리의 지나치게 낙후된 서비스 산업을 폐쇄된 굴 속에서 꺼내 어떤 글로벌 경쟁이든 과감히 뛰어드는 진취정신을 기르지 않는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의 현 중진국 경제구조를 탈피해 발전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에서는 의료, 교육을 비롯한 88개 서비스업 분야가 개방 대상에서 빠졌다. 중요 부문으로는 법률 시장이 5년 뒤 개방하는 것을 빼고는 교육, 의료 등 핵심 서비스 분야에서 개방이 거의 제외되었다. 따라서 FTA 효과는 극히 제한되게 되었고, '반쪽짜리 FTA'라는 이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애초 정부는 서비스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이 부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이익단체들의 반대, 실익이 적다고 판단한 미국의 소극적 자세, 그리고 내심 내키지 않았던 정부의 시장개방 태도가 어울려 결국 서비스 부문 개방은 유명무실해졌다. 2-2. 문 닫은 교육 시장 교육의 경우 한국에는 무한한 교육 수요가 존재하며 그만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폐쇄와 평등주의에 갇혀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아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방송(EBS)을 통해 "한국 교육은 그동안에도 성공해 왔고 그리고 지금도 성공하고 있다. 만일에 한국의 교육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면 오늘 한국의 성공은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학교가 어떻게 국민에게 봉사함에 있어 실패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예컨대,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 수는 9만 3700명으로, 11억 인구의 인도(7만 6700명)와 14억의 중국(6만 800명)보다도 앞선 세계 1위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5만 4000명이 나가 있어 중국 내 전 유학생의 38%를 차지한다. 이 밖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생은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보다 나은 교육을 찾고 있다. 이것은 일면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우리 국민의 교육 수요를 반영한다. 다른 한편, 이 중 대부분은 석·박사 학위를 얻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보통의 교육 수요자들이 이렇게 해외에 몰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기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국내의 교육 수준을 말해 준다. 우리 국민이 학원비, 과외비, 해외유학, 연수 등에 지출하는 私敎育 비용은 일 년에 약 30조 원으로 추계된다. 그러나 실상 여기에 들이는 학부모들의 헌신적 노력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교육자원 규모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자원과 국민의 무한한 교육욕구를 올바르게 유도한다면 우리나라는 교육 산업을 세계 첨단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아시아의 교육 허브가 되어 오히려 수많은 유학생을 유치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국내 시장을 과감히 개방하여 외국의 첨단 교육기관과 경쟁을 유도해야 가능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500만 명도 안 되지만 국내 교육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파격적인 조건까지 달아 선진국 대학을 끌어들여 현재 외국 유학생이 5만 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당국의 姑息的 간섭 행태와 폐쇄주의 때문에 교육 산업의 잠재적 능력을 제한해서 오히려 세계 제일의 유학생 수출국이 되고 있다. 외화낭비나 국민의 불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이 정도의 교육 서비스 수준이 가리키는 우리 교육기관의 역할 실패다. 한국의 교육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지식과 생각을 갖춘 인구를 배출하는 데 실패해 국가사회 발전에 족쇄(shackle)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6월 삼성전자는 애초 한국에 지으려던 4억 달러 투자, 800명 고용 예정인 반도체 합작법인 생산공장을 싱가포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독일 측 파트너인 질트로니크社가 여러 가지 열악한 한국의 투자환경 중 특히 국제학교 부족 등 외국인 직원들의 자녀교육 문제를 가장 우려해 적극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 경제의 중심지가 되는 데 폐쇄된 교육환경이 어떻게 발목을 잡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번 FTA에서 우리 교육계는 교육의 상품화, 불평등 심화, 교육주권 상실 같은 허황한 이유를 내세워 개방에 반대했다.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 이익집단과 정치적 이해가 같기 때문에 골치 아픈 교육 개방 주제를 협의 대상에서 빼어 버렸다. 미국은 공교육을 제외하고는 교육 시장이 이미 다 개방된 상태여서 더 이상 양보할 분야도 없다. 그런데도 현 상태에서 미국에 스스로 건너오는 한국인 유학생이 넘치는 만큼 굳이 한국 시장을 열 필요를 느끼지 않아 교육 서비스 분야를 협상 대상으로 요구하지도 않았다. 우리 교육 시장이 이런 수준이었으므로 국가 장래와 국민생활을 가장 크게 변화시킬 수 있었던 초·중등교육 개방은 이번 FTA에서 물 건너 가게 된 것이다. 2-3. 의료, 법률 서비스 및 방송 분야의 문제 의료 시장 역시 한국의 잠재력과 개방이익이 월등히 큰 분야이나 국내의 이익집단과 평등주의자들의 반대로 개방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병원, 의원, 의사 등의 상호 진출을 허용하는 의료 시장 개방은 현 단계에서 미국에 별로 실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영리 의료법인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고,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국을 찾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 가격이 한국보다 미국이 9배나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측으로서는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한국의 의료 서비스는 오늘날 국민의 수요가 늘고 국내의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몰리는 전망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못하는 대표적 산업 분야다. 한·미 FTA는 미국 의료 시장과의 통합과 경쟁을 통해 이런 우리의 의료 산업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 통하도록 기르자는 의도로 제기된 것이다. 그리하여 국내 의료기관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우리 국민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값싸게 공급해서 외국에 나갈 필요를 없게 하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우리 의료인력이 진출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차별적 서비스 공급이 산업의 본질이다. 따라서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비자 기대가 늘어나서 이들이 원하는 소비를 찾아 국경을 넘는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이런 특성에 부응해 태국은 의료 시장을 개방하고 영리법인을 허용함으로써 2004년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했다. 반면 태국보다 견줄 수 없을 만큼 경제력이 강하고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는 한국은 지난해 5090만 달러라는 의료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 적자는 국내 의료 산업이 현재와 같이 운영되는 한 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의 의료인력 수준을 감안한다면 기가 막힌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도처에 진출해 있고 성형외과, 임플란트, 라식 등 돈을 버는 분야에서는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고 있다. 아마 한국에서 영리와 경쟁체제를 도입해 가장 성공할 분야는 바로 의료 산업일 것이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료업은 거대한 자원과 잠재력을 가지면서도 오늘날 국가사회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이 역할은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양한 서비스 수요는 부응하도록 개방과 경쟁을 통한 자극이 특히 필요한 분야이다. 이번 FTA와 상관없이 교육과 의료 분야는 국민은 압력을 가하고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가까운 장래에 자율적으로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 교육, 의료 이외의 서비스 분야에서 그나마 단계적으로 개방되는 곳이 법률과 방송 시장이다. 향후 법률 시장은 5년간 3단계에 걸쳐, 회계세무 시장은 2단계로 나뉘어 개방된다. 당분간 한국의 법무법인들이 전문성과 국제적 경험을 구비한 미국의 로펌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열어 국제 수준의 법률 서비스를 공급해야 할 국제적 환경에 처한 시장이다. 이 분야 역시 한국의 두뇌가 집중되는 곳이지만 이들은 기존의 시장을 지켜 기득권을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사법개혁이나 시장의 문호를 개방하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국내 법조인들은 구태의연하게 "변호사가 많아지면 법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마치 "기업이 늘어나면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말처럼 어이없는 주장이다. 지금의 개방이 소비자에게는 법률 서비스 접근을 보다 쉽게 할 것이고,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사법개혁을 촉진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방송 시장은 채널 사용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의 간접투자가 완전히 개방되었다. 그러나 이 분야의 협상에서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측이 케이블 뉴스채널 CNN의 한국어 더빙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CNN 뉴스가 한국어로 실시간 전달될 경우 시청자를 빼앗길 것을 우려한 국내 방송사들이 이를 강력히 거부함으로써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분야도 아닌 국제적 뉴스의 主 매체인 국내 방송사들이 "방송 주권을 잃는다"는 이유로 방송 개방에 반대했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뻔뻔스러운 주장인가. 향후 국민의 뉴스 선택권은 방송사의 결정에 따라 제약받게 되었고 그만큼 국민의 알 권리는 제한된다. 목적은 다르지만, 30여 년 전 타임(Time) 지 등 외국 뉴스 간행물의 내용물을 먹물로 칠하고 가위로 잘라내 배포해서 국민의 눈을 가리던 독재정권의 행태를 지금 방송사들이 답습하는 것이다. 3. 국민이 지켜야 할 FTA KORUS FTA는 향후 反FTA 집단의 격렬한 비준 저지 활동을 뚫어야 한다. 지난 한·칠레 FTA 때 타결 이후 국회 비준까지 1년 4개월여간 나라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며 전개됐던 반대집단의 투쟁 행태를 돌아본다면 이번의 초대형급 FTA를 국회 동의까지 이끌어내는 데 얼마나 험난한 난관이 기다릴지 상상조차 어렵다. 한·미 FTA 반대진영에는 민주노동당·민주노총 등 정치조직, 환경운동가·학생·교수·여성 등 반미-반자유주의-반세계화 지식인 집단, 농민, 영화인, 문화예술인, 교육·보건의료·금융·공공 서비스·지적재산권 관련자 등 이익집단, 그리고 소비자단체까지 낀 수십 개의 조직이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旗幟 아래 뭉쳐 있다. 4월 말 범국본 온라인 서명란에는 150만 명 가까이가 FTA 반대에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이해관계와 색깔이 뚜렷한 少數를 대표하는 정치 및 이익집단이 있지만 대부분은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대표성이 모호한 조직들이다. 범국본이 내건 수많은 자극적 선전구호 중 看板구호가 바로 ‘한·미 FTA 원천무효! 이제 국민이 나섭니다’이다. 정말 우리 국민은 이들에게 이름을 빌려 줄 만큼 FTA의 피해자인가. 정부 당국은 FTA가 한국의 경제활동자와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 국민은 FTA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이익이 걸린 곳에 분명하게 손을 들어 주어야 한다. 첫째, 한·미 FTA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소비자다. FTA 당국자들은 협상 성과를 ‘시장을 얼마나 지켜냈는가’로 홍보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FTA의 이익은 실상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비효율적 국내 시장을 얼마나 개방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쌀 시장을 지켜 내고 쇠고기 시장 개방을 가능한 한 연장했다며 자랑하는 것은 소비자 대중에게는 賊反荷杖의 공치사다. 소비자 편에서는 그만큼 이익이 침해당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쇠고기를 먹는 국민이다. 지난 2월 '소비자 시민의 모임'이라는 국내 소비자단체가 세계 29개국의 단체와 함께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바에 의하면 똑같은 호주산 쇠고기가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2.6배나 비싸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고 체결 이후 15년에 걸쳐 미국산 쇠고기에 한해 40%의 수입관세가 제거된다. 따라서 15년 뒤 우리 국민은 최소한 수입 쇠고기를 40% 싸게 사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만 싸지면 호주는 한국 시장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호주 정부도 우리나라와의 FTA 체결을 고려해야 하며 이미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미 FTA는 아직 발효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 가격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4월 말 FTA 타결 조건으로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가 도입되자 국내 할인마트들은 현재 거의 독점하다시피 공급되던 호주산 쇠고기를 20~3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가격경쟁이 불붙고 캐나다 등 다른 나라도 가세할 15년 뒤에는 아마 40%보다 훨씬 크게 가격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쇠고기 이외에도 위의 조사에서는 20개 생필품 중 비싸기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것이 11개나 됐다고 밝혔다. 시장 개방에 의한 가격하락 원리는 이들 재화에 모두 작용할 것이다. 가격하락뿐만 아니라 그 품질을 높이고 조만간 연관되는 공산품과 서비스 값의 내림도 유도할 것이다. 이런 효과는 우리 서민생활의 고달픔과 양극화의 아픔을 어느 정도 덜어 줄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녹색소비자연대, 여성단체, 한국YMCA전국연맹 등 10여개 소비자단체가 한·미 FTA 소비자대책 위원회를 구성해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소비자단체들은 "농업을 타국에 의존하게 되면 식량 무기화에 속수무책이 될 것이며, 식품안전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식량을 무기화한다는 관념 자체가 세계의 무수한 식량수출국을 모두 假想의 적으로 보는 냉전적 사고에 연유한다. 만약 국제 사회에 '농업은 국방과 같아 자급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다면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모든 나라가 식량자급을 해야 한다. 또한 자원, 에너지, 기술 등이 모두 전략적 무기로 악용될 수 있으니 모든 국가가 자급자족형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구상 어떤 종류의 경제 문제도 정치 논리에 휘말려 해결이 불가능해진다. 식품안전 문제 역시 소비자단체가 그 본래 목적을 잃고 우선순위를 뒤바꾼 주장이다. 미국산 쇠고기 뼛조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식품안전당국은 3주일을 소비해 쇠고기 7톤을 일일이 肉眼으로 조사했다. 샘플이 아닌 全數조사를 할 경우 발견된 상자만 조치함이 관례이나 우리 당국은 2~3개 나온 뼛조각을 문제 삼아 전량을 반송시켰다. 그때 발견된 손톱만 한 뼛조각은 광우병과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의해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국가'로 등급이 내려져 확정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반미좌경집단들은 지금도 한·미 FTA를 '죽음의 협상'으로 선전하고, 우리 소비자단체들도 이들에 영합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차단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는 행위가 분명하다. 이들은 쇠고기뿐 아니라 모든 농산물에 대해 '신토불이' 같은 국수주의적 자급이념을 앞세워 개방에 반대한다. 소비자단체의 목적은 소비자 이익을 지키는 것, 곧 이들의 厚生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쇠고기 시장만 본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후생을 늘려 줄 최선의 조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를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서 서민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 소는 미국에서 자라는 1억 마리 중 단지 세 마리였다고 한다. 이 소를 3억 미국인과 세계 90여 개 나라 사람들이 먹고 있다. 이런 쇠고기 공급을 국민 건강으로 위협해 차단함은 소비자를 팔아 그들의 이념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이 상승하면서 생활물가는 오르는 것이 세계의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이 추세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현저하다. 올해 2월 유엔이 책정한 서울의 일일 출장수당(DSAR)은 세계 2위인 368달러로, 뉴욕(347달러), 파리(306달러), 도쿄(273달러)보다도 높다. 6년 전에는 도쿄(301달러)보다 서울(244달러)이 훨씬 낮았다. 이런 결과는 농산물 공급이 성장에 원활하게 적응하지 못해 기초생필품이 비싸지고 이에 파급되어 서비스 산업도 고비용-비효율의 구조로 바뀌기 때문이다. 즉, 모든 소비재 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폐쇄된 농산물 공급체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국민이 선진국보다 더 비싼 비용으로 살자면 경제 전체에 온갖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생활비 상승은 서민 생존권의 저항과 임금인상 압력을 높인다. 이에 따라 산업경쟁력 하락,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고용 축소 및 저성장이라는 악순환이 유발된다. 국민은 싼 소비를 찾아 해외로 나가게 되고, 그만큼 서비스와 제조업의 국내 수요기반을 무너뜨리고 경기를 악화시킨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129억 달러의 여행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곧 꽉 막힌 우리의 서비스 산업 수준을 가리킨다. 지금 우리 정부는 송도의 국제도시, 물류 허브, 금융 허브 등 장래의 국가설계를 그리는 중이지만 이에 참여하겠다는 외국의 대기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한·미 FTA는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켜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근로자와 다양한 서비스 종사자들이 모두 한·미 FTA의 명백한 수혜자가 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수출 활로가 열리면 근로자들에게 일감, 고용 기회, 고용 안정이 그만큼 보장될 것이다. 물가가 안정되어 소비 탈출이 그치고 내수기반이 확충되면 여행·관광, 숙박, 도소매 등 산업이 활성화할 것이고, 미국의 학교, 병원, 방송사 등이 한국에 진출해도 이 분야가 고용 효과를 볼 것이다. 이 FTA를 미국의 노동자나 국내의 일부 피해 산업이 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민노당, 민노총, 그리고 각종 서비스의 대표 조직이 반대함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것은 이들이 지극히 무지하거나 노동자 일반보다 조직의 私益을 우선하는 집단임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농민은 FTA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농민의 반대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도 발전하는 경제 내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야 장기적으로 생존할 것이며, '개방'을 통해 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2005년 우리의 농가인구 비중은 7.1%이나 이들은 GDP에 단지 2.9%를 이바지했다. 그것도 싼 세계 시장 가격을 적용하면 얼마나 작아질지 모른다. 이런 농업 부문에 1992~2004년간 85조 원의 국민자원이 지원되었고 2004년 이후 10년간 다시 119조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말하자면 우리 농촌은 다른 국민의 희생 속에서 존재해 왔으며 아무리 도와도 가난하게 남는 존재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번 FTA를 반대하면서도 농민 대표들은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쇠고기 값은 내리겠지만 국내 한우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언제까지 농업은 나머지 경제사회의 발목을 잡아서 생존하기를 원하고, 또한 국민이 언제까지 이를 허용할 것으로 보는가. 이런 패배주의 태도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의 농업은 궁극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농업도 다른 산업처럼 개방과 경쟁에 직면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고소득 선진국의 농업처럼 특성화된 품종, 기술, 시장을 찾아야 항구적으로 농업과 농민이 살 수 있다. 따라서 농업도 FTA로부터 얻을 것이 있다. 지구촌 경제가 大勢인 오늘의 세계에서 폐쇄된 농업은 마치 고립으로 망해 가는 북한 경제처럼 언젠가는 도태될 운명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미 FTA는 우리 농업 부문에 잠재한 기업가정신을 일깨우거나 새롭게 달라지는 시장환경을 활용해서 기회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농민이 피해보상을 키우기 위해 시위한다면 모를까, 이것이 지나쳐 FTA 자체를 깨는 일이 벌어진다면 농민과 국민 모두가 敗者가 되고 만다. 한·미 FTA는 물론 모든 국민에게 이득이 되지 못한다. 경쟁, 개방, 투명과 성장의 가치인 FTA는 폐쇄주의자, 특혜만 바라는 집단이기주의자 및 이들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집단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좌파정치가, 반미와 기득권 타파를 선동하는 시민단체, 교원단체, 기타 이익단체들은 전력으로 FTA 비준저지 활동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보통의 한국인들은 개방에 강함을 보여 왔다. 한국인들은 세계 무대에 서면 기업, 문화, 예술, 체육, 어느 분야에서나 기대 이상의 능력을 과시한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단련된 한국인에게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경쟁력이 잠자고 있는지 모른다. 반면 과도하게 보호막을 친 농업, 교육, 법률, 기타 서비스 분야들은 어김없이 낙후한 형편이다. 밖에 나가 경쟁하면 펄펄 나는 사람들이 국내의 좁은 땅에서는 서로 치고 잡아뜯으며 힘을 낭비하는 꼴이다. 이들이 FTA 10년 후 우리의 법률, 교육 및 금융 수준을 세계 최첨단으로 끌어올릴지 누가 알겠는가. 능력 있는 국민에게 넓은 시장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국가지도자들의 의무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에 모처럼 크게 의무를 수행한 것이다. 한·미 시장 통합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경제활동의 기회를 넓히는 데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기대하는 보이지 않는 이익은 우리의 제도, 관행과 사고방식을 미국, 곧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법질서와 시장의 합리성을 밥 먹듯 무시하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주체들이 그들의 행위양식을 알게 모르게 선진 세계의 관례에 同化시킬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올 하반기 우리의 시민, 노동자, 농민, 기타 활동주체들이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사회 발전과정을 거치며 축적한 이런 능력, 곧 선진 사회 시민의 능력을 시험할 시기가 왔다. 바로 현재 비준이 걸린 KORUS FTA를 합리적 의식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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