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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평가와 전망[월간조선 2010/2]

yboy 2010. 3. 2. 13:35

  1. 정치
2010년 2월호
  1. 정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평가와 전망

세종시 수정안은 ‘정부부처 이전’이라는 인질을 풀기 위한 몸값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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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로선 극진한 성의표시 다한 셈, 수정안이 최종안임을 분명히 하고 국민 설득해야
⊙ 기업·대학 유치로 초기에 인위적인 ‘나무 심기’ 효과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정부에 의존하는
‘정책도시’에 그칠 가능성 높아

金榮奉 중앙대 명예교수
⊙ 1944년 서울 출생.
⊙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美콜로라도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상공부 상역국 수출계획과장,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역임.
⊙ 저서 : <경제체제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떼한민국> <신경제체제론> 등.
2010년 1월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1월 11일 발표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정부 부처(9부 2처 2청) 이전의 백지화 ▲세종시 발전방안 등 두 개의 중대한 제안을 담았다.

첫째, 정부 부처 이전의 백지화는 너무나 명백한 수도분할, 정부 쪼개기의 부당성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결론이다. 이것은 세종시 수정 추진의 목적이자 철칙(鐵則)이다.

둘째, 대학·기업 유치, 국제과학비즈니스 거점지구 지정 등 세종시를 위한 선물 패키지는 관(官) 주도 정책도시를 다시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 명분이 21세기 국가발전 전진기지가 됐건, 무엇이 됐건, 그 본질은 노무현(盧武鉉) 시대의 행복도시(행정복합도시)나 기업도시·혁신도시를 만드는 것과 같다. 충청도민 및 야당 무마책이며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정책임과 다름이 없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은 ‘행정부 이전 포기를 위한 비용’, 즉 ‘정부 부처 이전이라는 인질(Hostage)을 풀기 위한 몸값(Ransom)’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적 희생을 극소화하는 대책은 ‘현 시점에서 세종시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고, 최선의 대책은 가능한 한 규모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즉 몸값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생산성을 이끄는 집단은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 기업이 가는 곳에 도시가 형성되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 과학·교육·기술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관의 주도하에 ‘21세기 국가비전을 담는 도시’ 나 건설할 시점인가?

이번 정부 수정안의 의미는 완전한 부처 이전 폐기를 담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동원해 극진한 ‘성의표시’를 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의 머리와 팔다리를 잘라 배치하는 것을 막자는 것인데, 무엇인들 희생시키지 못하겠는가. 국민은 여기까지 정부가 몰린 점을 이해하고 수정안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원안(原案) 고수를 주장하는 측은 정부의 수정안을 외면하고 있다. 이미 박근혜(朴槿惠) 의원은 “충청도 여론이 바뀌어도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1·11수정안이 최종안임을 분명히 해야

사실 세종시 선물은 그간 야당과 친박(親朴), 그리고 충청도의 저항 때문에 자꾸 커졌다. 세종시에 자족기능을 아무리 주어도,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세력은 “행복도시 원안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안(행정부 이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원안에는 기업·학교 등 자족(自足)용지 비율이 6.7%에 불과할 뿐인데도 말이다. 이들이 원안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북한의 핵처럼 유일하게 ‘플러스 알파’를 요구할 수 있는 담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향후 추진과정에서 1월 11일 내놓은 수정안이 정부의 최종안임을 명백하고 단호하게 천명해야 한다. 정부는 ▲세종시와 관련해 더 이상 양보나 타협이 없고 ▲반드시 행정부 이전 중단이 전제되는 ‘최종 제안’임을 스스로 다지고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측에 통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3월에 국회가 개원하고 6월 지방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정부·여당이 정치적 타협을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수정안 발표 전, 한 친박 인사는 정부 부처 5~6개 이전을 제안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과거 ‘정치적 타결’을 한다면서 항상 그런 식의 타협을 해 온 정당이다.

아무리 정치집단이라도 인질의 일부만 풀고 남은 인질을 제물(祭物)로 남기겠다는 타협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런 타결은 노무현(盧武鉉)시대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때는 1·11 수정안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인위적인 ‘나무 심기’ 효과는 있을 것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하루 앞둔 2010년 1월 10일 세종시 건설 예정지 내 첫마을 아파트 건설공사장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언론의 관심은 세종시가 자족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지엽말단에 불과하다.

세종시는 태어날 때부터 ‘정책도시’이므로 ‘자생(自生)능력을 가지는 자족도시’와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세종시는 정부가 계획하는 도시일 뿐이고,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나 충청도의 입장에서는 주변에 기술·교육·산업도시가 성장하고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이 구비된 입지조건에 비추어 볼 때 ‘과학·비즈니스 경제도시’가 가장 유망한 대안(代案)이다.

정부가 기업에 염가(廉價)로 땅을 주고, 대학에 땅과 정원(定員)을 약속했기 때문에 초기에 인위적인 ‘나무 심기’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 불행은 처음부터 자립 의지나 자조(自助) 능력과는 관계없는 정책의존형 도시로 탄생한 데 있다. 향후에도 기대했던 만큼의 인구증가나 기업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정부대책을 요구하고, 정치집단이 가담해 정부지원을 쥐어짜려 할 가능성이 크다.

‘세종시 인구 50만명’이라는 목표는 2030년에서 2020년으로 당겨졌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는 2050년까지 650만명 감소가 예측되고 있다. 이는 향후 도시도 생존경쟁과 도태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뒤 세종시의 인구가 20만명이 될지 100만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건 도시건 자립·자족의 능력, 경험 및 의지가 없는 자는 반드시 패배, 도태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처음부터 ‘선물 챙기기’와 ‘남의 탓’에 길들여진 정치도시가 향후 생존능력 개발은커녕 1·11 수정안이 챙겨준 재산이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타(他)지역 기능과 기업을 끌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지만 세종시가 또 하나의 ‘제로 섬 게임’을 만드는 점은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세종시가 없다면 다른 도시가 중이온 가속기를 가져갔을 것이다. 국제비즈니스, 기업투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학입학 지원자는 해마다 급속히 줄 전망인데 세종시의 대학생이 증가하면, 그만큼 다른 지역의 지방대 지원자가 줄 것 아닌가. 세종시가 건설되면 대덕시로 집중될 과학·연구 기능은 어쩔 수 없이 분산될 것이다.

세종시의 존립을 위한 인구와 자원은 다른 지역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로 인한 1차적 영향을 받는 대상은 충청도 이외의 다른 지역이 아니겠는가.

세종시는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세종시를 위해 조금씩 희생하는 결과 생겨나는 것임을 국민과 충청도민은 알아야 한다.


균형 발전론은 한국에 맞지 않아

이번에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으로 이명박 정부는 할 일을 다했다. 하지만 수정안 반대자들은 정부의 어떤 소통노력도 거부할 것이며 단지 국민여론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질 때 협상에 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향후 수정안 처리의 속도는 정부 여론전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세종시가 언론의 집중조명 대상이 됨에 따라 궁극적으로 세종시 원안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날 수정안 반대를 주창하는 세력의 논리적 근거는 ‘국가균형발전론’과 박근혜 의원의 ‘원칙과 신뢰론’이다. 정부안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서는 이 논리에 대한 집중적 공략과 홍보가 필요하다.

국가균형발전론은 한국의 정황에 맞지 않는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중국 충칭(重慶)시(490명, 8만2000㎢/3200만)보다 25% 높다. 국토면적의 3분의 2가 산악지대다. 이렇게 좁은 나라이므로 수도권뿐 아니라 농촌과 지방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밀집되어 있다. 브라질·호주와 같이 땅이 넓고 인구가 빈약한 나라에서 통하는 국토균형 논리는 한국에서 합당할 수 없다.

노무현 시대의 국토균형 이론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리의 생존환경을 무시한 쇄국주의 국가운영 전략이다. 국토균형 정책이 정부청사를 옮겨야 할 만큼 중요하다면 한국의 모든 기업은 해외공장을 지금 당장 모두 폐쇄하고 전국의 방방곡곡 오지로 옮겨야 한다.

세종시는 국가균형발전 논리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충청남도는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균형지향 정권 기간 중 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지역이다. 2001∼2005년 지역 내 총생산(GRDP) 연평균 증가율은 충남(7.4%)이 전국 최고로 국내 평균성장률의 2배에 이른다. 2008년 1인당 지역총생산은 충남(2996만원)이 전국 2위로 광주(1552만원)와 대구(1359만원)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국토균형발전 논리에서 보면 오늘날 세종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오히려 국토균형발전에 반하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투표가 최후의 방안

현재 친박세력이 매일 내세우는 논리가 ‘원칙과 신뢰의 정치’다. 하지만 필자는 행복도시법안 통과는 아마도 우리 대의(代議)민주주의 정치역사 중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違憲)결정을 받은 행정수도 복사판으로 기만적인 행정복합도시를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표 계산과 파벌 싸움 때문에 국민이 준 대의권(代議權)을 팔았다. 이렇게 원천적으로 국민을 배신한 국회 결정에 대해 ‘정치적 신뢰나 원칙’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국회·국회의원들이 이런 잘못된 결정을 수정할 능력이 없다면, 그런 국가기관은 민주주의 탈만 썼을 뿐 국민과 국가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 줄 수 없다. 이런 정치권의 무능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인들의 당리당략(黨利黨略) 때문에 국회가 세종시 수정안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국민투표만이 최후의 방안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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