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노동개혁 없는 ‘세금 일자리’는 虛像

yboy 2017. 4. 21. 22:05
  기사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1일
<포럼>
노동개혁 없는 ‘세금 일자리’는 虛像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경제학

18일 앞으로 다가온 5·9 대선에서 취업이 절실한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관심이 큰 공약은 일자리일 것이다. 그중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은 특히 국민이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할 사안이다. 문 후보는 ‘공공부문 81만 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민간 부문 50만 개 일자리 창출’ 등을 공약했다.

우선, 정부의 돈으로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서 81만 명을 채용하자는 공약은 국가의 복지 정책은 될지언정 일자리 창출은 될 수 없다. 일자리란 시장이 그 생산성을 요구해서 인력 수요가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81만 명의 공직은 대선 공약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지 시장이 요구한 건 아니다. 이런 ‘맹목적 고용’은 본질적으로 육아수당, 노인수당 같은 정부의 복지 지출 행위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일자리는 시장에서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문 후보도 최근 TV 토론에서 “기업이 만드는 것이 맞지만, 기업이 안 만들므로 국가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국가가 찍어내는 일자리라면 정권은 81만 명 아니라 160만 명도 순식간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정부가 모든 취업 실패자를 세금을 올리고 공채를 발행해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법을 만들면 된다. 이런 정책이 지속된다면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곧 바닥을 기고 국가 경제는 거덜 나서 결국 국민은 실업 위기에 내몰릴 것이다.

국가가 21조 원을 들여 공직자 81만 명을 뽑으면 그 비용은 나머지 국민이 치러야 한다. 일반 국민에게는 세금 증대와 국가 서비스 감축이 뒤따를 것이다. 또한, 갑자기 늘어난 공무원들은 그들의 일거리를 기업과 시장이 하는 일을 더 간섭하고 규제하는 데서 찾기 쉽다. 법인세·상속세 등 기업 세금을 늘리면 투자 회피, 해외 탈출 등을 유발해 민간 부문의 일자리를 구축(驅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로 새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은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설득력이 없는 공약이다.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 원칙은 기득권 노동자가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원칙이 없으면 기업의 시간당 임금이 그만큼 상승하게 되어 모든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잃게 된다. 기업들은 손실 증대로 투자를 감축하거나 해외로 도망가거나 망하거나 하여 국가의 고용량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명한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독일 하르츠 개혁 등이 성공한 것은 노동자 측이 근무시간 단축 대신 임금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기득권 노조들은 절대 임금을 양보하지 않고, 문 후보의 정당은 이 노조들을 절대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을 가진다. 따라서 지금 문 후보에게 요구되는 공약은 50만 명 일자리 창출 목표보다, 당선 후 기득권 노조의 못된 행태를 반드시 고쳐놓겠다는 결의를 천명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는 일자리 창출은 모두 정부 돈으로 만든다는 허상(虛像) 정책이 관행으로 서게 됐다. 그러나 이제 한국을 세계 최고의 기업 친화 국가로 만들겠다는 공약이 풍미할 때가 됐다. 서비스산업 규제, 수도권 투자 규제, 기타 모든 규제를 최대한 줄이고, 자유경쟁 질서를 최대한 보장하고, 기막히게 비대한 노조 권력을 개혁하며, 법인세를 내리고, 세계 최악의 반기업 풍토를 조성하는 세력과 결전을 불사겠다는 공약 같은 것이다. 국민이 이런 상식적 공약을 알아볼 때 풍부한 일자리 기회도 찾아올 것이다.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