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칼럼

<포럼>국가보훈을 ‘정권 보훈’ 수단化 하나

yboy 2019. 3. 29. 15:47
  기사 게재 일자 : 2019년 03월 29일
<포럼>
국가보훈을 ‘정권 보훈’ 수단化 하나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및 지원에 관한 사무를 하는 곳이다. 국가보훈의 의미는 국가의 성립 및 수호에 헌신한 분들을 지원하고 기념함으로써 이들에게 보답하고 국민의 국가수호 정신도 앙양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출범 이후 국가보훈의 성격 및 보훈자 선정과 관련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북한 정부의 최고위직을 지낸 의열단장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해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미 김원봉의 서훈이 가능한지에 대해 정부법무공단 등에 법률 검토를 의뢰했고, 법무공단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회신했다고 한다. 김원봉은 1947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에 임명됐고,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이런 김원봉에 대해 피 처장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북한 정권에 기여했다고 해서 서훈을 검토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만약 피 처장의 주장대로 김원봉같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어도 독립운동한 사람이면 다 보훈 대상자가 될 수 있다면, 야당이 주장하듯 장차 김일성에게도 훈장을 주고, 그 손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훈연금을 줘야 하느냐는 논리가 언제나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보훈의 존재 이유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중대한 변화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이다. 해방 후 공산주의는 반(反)대한민국 노선을 명확히 했고, 이후 대한민국을 궤멸시키기 위해 6·25전쟁을 일으켰으며 아직 종전되지 않은 상태다. 논리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대한민국이 없어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을 적대해 그 존재를 방해한 인물들이 국가유공자가 될 수는 없다.

지난해 보훈처는 과거 6차례의 보훈심사에서 탈락했던 손혜원 의원의 부친 손용우 씨의 7번째 신청을 받아들여 독립유공자 서훈을 했다. 이 과정에서 피 처장은 ‘이해 당사자’인 손 의원을 만났고, 2018년 이후의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기준은 ‘북한 정부 수립 과정에 직접 기여하지 않는 경우’로 완화됐다. 이에 따라 야당이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피 처장은 손 씨의 공산당 활동 증언 기록이 신빙성 담보가 어렵다고 심사위원회가 판단해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보훈처장이 권력자-이해당사자를 만나고, 과거 좌우 정권에서 6차례나 탈락된 서훈 신청이 7번째로 받아들여져 통과되고, 그 과정에 보훈자 선정 기준이 바뀌었다. 이 모두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우연의 과정인가.

2015년 8월 15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김원봉 등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본 뒤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문 정권 출범 후 김원봉 서훈 활동이 급격히 활발해졌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보훈은 국가수호와 국민통합의 상징이 된다. 후대가 전대(前代)의 희생에 보답하고 그 과정이 호국과 국민통합의 정신을 앙양한다고 하겠다. 보훈이 어떤 개인 집단 정권 이념의 선호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이는 오히려 국민 분열과 국가 쇠퇴의 씨만 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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