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低)출산, 반드시 나쁜 것인가.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금년 1~7월 태어난 아이 수가 18만 명으로 20년 전 37만 명의 절반도 안 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반면 1~7월 혼인 건수는 작년에 비해 8.6% 감소했다고 하니 앞으로도 출생아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저출산은 절대 악’이라는 관념이 지배한다. 언론·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인구절벽’으로 곧 쇠망할 위기에 있음을 노상 지적하고, 정부는 ‘국가예산으로 출산증대를 이룬다’는 인구정책을 만들었다. 과연 이런 관념-정책이 한국의 출산·인구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인지 한번 돌아보자.
우리정부는 현행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계획(2016~20년)‘기간 중 저출산 분야에 총 108.4조원을 쓸 계획이다. 통계청은 이 기간 태어날 아이를 205만6천명으로 추산하므로 아이 1인당 530만원이 지원되는 꼴이다. 이 아이들은 이런 지원 없어도 아마 대부분 태어날 것이고, 1억 원을 받아도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OECD 최고의 인구조밀국가다. 생식(生殖)여건이 비좁으면 개체수를 조절함이 모든 생물계의 당연한 현상이다. 오늘날 한국에 특히 만혼·비혼·출산기피가 두드러지는 현상도 ’국가‘라는 유기체가 나름대로 적정인구에의 수렴본능을 발휘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여건에 국가의 힘으로 출산증대를 이루겠다는 정책이 가당한 것인가.
과밀인구의 장점의 하나는 사회에 경쟁이 치열해져 ‘인구의 질(質)’이 향상되는 것이다. 비좁은 땅에 5000만 인구가 몰려 사는 한국인은 극심한 경쟁을 생존조건으로 살면서 교육·능력·자격 등을 유별나게 키워왔다. 이렇게 훈련된 국민은 경제성장의 여건이 주어질 때, 국가경쟁력제고와 일터창출에 모두 참여해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저성장·취업난의 시대가 되면 그만큼 치열하게 사회적 분열·갈등·스트레스 등을 발생시키는 원천이 된다. 이래서 한국에서는 갑과 을,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끊이지 않고, ‘헬 조선’에서 결혼도 출산도 못하겠다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상 한국같이 인구과밀에 성장정체를 경험하는 나라에서는 저출산이 일인당소득 상승, 청년실업 해소, 사회적 갈등 완화, 기타 삶의 질 개선에 효과적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한국보다 20년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시작한 일본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청년실업 감소, 최저임금 상승 등 바람직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니혼게이자이신문 에 의하면 일본은 고졸 예정자의 구인 배율(倍率)이 2.52배에 달해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인구정책이란 인구규모보다 그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능력·필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고, 모두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이 되고, 모두 평등해져야한다는 획일적 가치관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한 사회가 건강하고 경쟁력 있게 존재하려면 학력·능력·가치관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필요한 일을 기꺼이 수행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사회가 돼야한다.
지금 한국인의 출산증대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국가사회의 노쇠화를 지연시킬 유일한 방도는 젊고 건강한 외국인을 수혈 받는 것이다. 인구정책에는 대한민국을 헬조선 흙수저의 불행한 나라로 보는 ‘원조 한국인’보다 한국을 기회와 행복의 나라로 여기는 ‘귀화 한국인’을 훨씬 우대하는 내용을 담아야한다. 더 많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믿는 나라일수록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 국민의 출산율도 커지는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LA 201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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