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일에 이어 8일에도 공정경제 3법의 협치 조건으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해줄 것을 여당에 제의했다. 지난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노동자 등을 더 두텁게 포용할 때”라고 거절한 것을, 이번에 “노동법 개혁이 없으면 정부가 내세우는 한국식 뉴딜도 성공할 수 없다”고 적시(摘示)하며 다시 촉구한 것이다.
경제 3법과 한국식 뉴딜은 누가 봐도 상극과 모순투성이의 조합이다. 한국판 뉴딜이란 정부가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입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를 총 190만 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민간부문이 거대한 투자 확대로 부응해 줘야 하는데, 경제 3법이 시행되면 기업 경영권 위협이 쉬워져 건강한 국내 기업들이 모두 외국 투기자본의 사냥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한다. 그리되면 기업들로선 투자·연구개발과 고용 확대에 써야 할 자금을 경영권 방어와 각종 소송 대응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매년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 순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자유도는 2018년 100위에서 올해 112위로 내려갔다. 향후 ‘뉴딜’ 일자리가 거대하게 늘어나려면 수많은 새로운 고용이 다양하게 창출돼야 한다.
그런데 현행 노동관계법은 이미 고용된 정규직 근로자와 노조의 권리만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어 새로운 취업 준비생들의 일자리 기회는 철저히 차단한다. 이 사태는 또한 정의로운 것인가? 오늘날 해마다 악화하는 청년 취업난, 소득 양극화, 기업 경쟁력 저하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정권이 지나치게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준 데 기인한다. 따라서 경제 3법에 부친 야당의 노동법 개혁 요구는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일 이 대표는 “경제 3법은 기업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이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즉, 한국의 기업들은 악덕(惡德)의 존재여서 이들의 행위는 당장, 가차 없이 제어돼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노동자에게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노동관계법 개혁은 매우 가혹한 것”이라고 했다. 즉, 기업은 착취자, 노동자는 착취 대상자여서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정권에 뿌리박혀 있다. 이렇게 정권이 19세기 자본주의의 계급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기업에 자유를 주거나 노동자를 제어할 법령은 불가능함이 당연하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성장 면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해 나가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이것은 극심한 세계 경제의 악조건 속에서 한국의 ‘나쁜 기업’들이 빼어나게 버티고 있는 덕인가, 아니면 국가와 정권이 환상적으로 경제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보는가? 멀쩡한 기업에 불필요한 치료를 하면 오히려 건강한 기업을 죽일 수도 있다.
어느 나라든 기업이 잘돼야 국민이 행복해지고 국가의 위신이 선다. 국민에게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군인·경찰·공무원·의사·교사 등 온갖 국가 서비스가 보급되고 국가·국민의 수준·위상·명예가 고양되는 것이다. 삼성·현대 같은 기업 덕분에 정치인들은 외국에서 대접받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같은 ‘기업 때리기’가 계속되면 결국 한국은 기업이 사라진 국가가 돼 정치인들 또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니콜라스 마두로 같은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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